좋은 글의 3가지 방향
좋은 글의 3가지 방향
2025.11.07
admin·⌛18분

1.
이한민 작가의 《책섬》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 걸려 넘어지는 문장이 있다.” 그 말이 참 와닿았어요. 정말 그런 문장이 있습니다. 내 마음을 곡괭이로 찍듯이 번쩍 들어올리는 문장 말이죠. 그 문장을 읽는 순간, 평소엔 느껴지지도 않던 심장과 숨쉬는 근육의 위치가 또렷해집니다. 그럴 때면 책을 덮고, 잠깐 숨을 고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그렇게 나를 일으켜 세웠던 문장이, 어느 날은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문장의 잘못이 아니에요. 내가 달라진 겁니다. 문장은 그대로인데, 그 문장을 읽는 내가 변한 거죠.

그래서 제 방에는 그런 문장들이 들어 있는 책이 한가득 쌓여 있습니다. 다시 읽고 싶다가도 망설입니다. 예전처럼 가슴이 뛰지 않으면 어쩌나, 그때의 감정이 사라져버리면 책이 상처받을 것 같아서요. 여전히 나와 사이좋은,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해주는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거든요.

이게 글이라는 것의 본질 같습니다. 문장은 변하지 않아도, 그 문장을 읽는 내가 변하면 그 문장은 전혀 다른 뜻을 가지게 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의 의미가 사전 속이 아니라, 사용되는 순간에 생긴다고 했죠. 글이란 결국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만나는 자리, 시간을 건너 다시 쓰는 대화 같은 것 아닐까요.

2.
정확히 어떤 책이었는지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제 인생의 전부처럼 여긴 책들이 있습니다. 출근길에도 들고 다니고, 퇴근길 카페에서도 펼쳐놓고, 비에 젖으면 조심스레 말리고, 표지가 닳으면 테이프로 붙이고. 그렇게 오래 곁에 두다 보니 표지와 제본 부분이 너덜너덜해질 정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책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들고 다녔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그 책을 읽은 나를 단숨에 무너뜨리는 또 다른 책을 만났습니다. 전에는 그 문장들이 세상의 진리인 줄 알았는데, 새로운 책을 읽고 나서부터는 그 진리가 조금 낡아 보이더군요. 그 순간 묘한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어제의 믿음이 오늘의 우물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 이후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위로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성을 위해 책을 찾는 건 아닐까. 그 흔들림 속에서,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니까요.

3.
그래서 이제는 ‘좋은 글’을 단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이란 완성된 문장이나 명언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작동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문장이 내 안에서 불편하게 머물든, 위로하든, 질문을 던지든 상관없습니다. 그 순간 내 사고를 움직이고, 내 삶의 방향을 살짝이라도 틀게 만든다면 그게 바로 좋은 글이 아닐까 싶어요.

글은 결국 나와 세계의 관계를 새로 쓰는 언어입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를 전부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시선으로 다시 번역할 수 있는 존재니까요. 그래서 글을 쓴다는 건 늘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는 일입니다. 나는 그 문장에 의해 조금씩 다시 만들어지고, 그렇게 변한 내가 또 다른 문장을 찾아갑니다.

4.
좋은 글이라는 건 단순히 문장을 잘 쓰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글은 생각을 정리하는 도구이기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기도 하더라고요. 결국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글이 세 가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생각을 정리하는 방향, 둘째는 그 정리를 넘어 확장하는 방향, 셋째는 앞의 두 방향이 파괴되고 다시 재생산되는 방향입니다.

이 셋은 따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정리는 혼란을 낳고, 혼란은 깨달음을 만들며, 깨달음은 다시 관계 속에서 다듬어집니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그 세 흐름을 끊임없이 순환하는 일이지요.

쓰다가 스스로를 한 번 깨뜨리고, 그 조각 위에서 다시 태어나는 일. 저는 그게 좋은 글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세 가지 방향에 대해 하나씩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좋은 글의 첫 번째 방향은 혼란을 구조화하는 것입니다.

저는 머릿속이 늘 뿌예요. 생각이 많고, 그 생각들이 자주 엉켜버리죠. 예전에는 일기만 써도 정리가 됐는데,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혼자 감당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책이 제게는 가장 강력한 소화제가 되어줬습니다. 명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마음의 덩어리를 풀어주는 책들, 그런 글들이 제게 좋은 글의 첫 번째 방향이었습니다.

김영민의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가 그랬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죽음 공포를 겪어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 책을 다시 펼쳤죠. 김영민 교수는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사유의 대상으로 다룹니다. 죽음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하는 그 태도는 제게 이상할 정도로 안정감을 줬어요. 실제 공포가 찾아올 때마다 그 문장들이 숨구멍이 되어줬습니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도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불안은 없애야 할 감정처럼 느껴지지만, 그는 그것을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설명하죠. 그 문장을 떠올리면, 제 안의 막연한 불안도 통제 가능한 감정으로 내려앉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와 《사랑의 기술》은 제 생각을 더 깊게 정리해줬습니다. 프롬은 인간의 내면을 심리학이 아닌 철학의 언어로 다루며 삶의 방향을 세웁니다. 《소유냐 존재냐》는 ‘가지려는 삶’에서 ‘존재하는 삶’으로 시선을 옮기게 했고, 《사랑의 기술》은 사랑을 관계의 기술이 아닌 존재 방식으로 다시 써줬어요. 그 책들을 덮고 나면 머릿속이 다림질된 듯 정돈됐습니다. 좋은 글은 그런 힘을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혼돈을 질서로 바꾸는 언어, 그게 제가 말하는 첫 번째 방향입니다.

(2)
좋은 글의 두 번째 방향은 그 질서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나의 한계를 부수고, 그 너머로 확장할 수 있는 거점이 되어야 하죠. 질서가 완성되면 사유가 멈춥니다. 그래서 글은 자신이 만든 틀을 한 번 깨뜨려야 하고, 그 틈에서 확장이 시작됩니다.

저에게 그런 경험을 준 책이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였습니다. 사실 저는 SF 장르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처음으로 SF의 재미를 알게 됐습니다. 탄탄한 과학적 근거가 오히려 이야기를 더 생생하게 만들었고, 그 안의 인물들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때 처음으로, 제가 닿지 못했던 세계를 언어로 탐험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뒤로 닐 셔스터먼의 《수확자》 시리즈를 읽게 됐습니다. 인공지능이 모든 행정을 담당하는 사회, 죽음을 거의 극복한 근미래의 세계에서 여전히 종교가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모습이 흥미로웠어요. ‘죽음이 사라진 시대에도 인간은 인간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남았습니다. 그런 상상 속에서 지금의 AI 시대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는 걸 깨달았죠.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저를 새로운 세계로 던져줬다면, 《수확자》는 그 세계에서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이 두 권의 책은 결국, 익숙하게 정리된 세계의 질서를 의심하고, 그 너머로 생각을 확장시키게 했습니다. 좋은 글이란 바로 그런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3)
좋은 글의 세 번째 방향은 앞선 두 방향을 끊임없이 깨뜨리고 재생산하며, 세상과 사람, 그리고 관계를 새로 짜 나가는 것입니다.

책을 주변사람들보다 좀 더 읽는다는 이유만으로 괜히 자만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이렇게 바뀌었지’ 하며 스스로에게 도취될 때가 있죠. 그럴 때 뒤통수를 세게 후려치고, 세상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드는 책들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양귀자 작가의 《모순》이 그랬습니다.

제 친구 중 한 명은 새해마다 이 책을 다시 읽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큰 호기심이 들어 계속 읽고 싶었지만, 꾹꾹 참다가 마침내 작년 새해에 읽었습니다. 처음엔 사랑과 결혼 앞에서 여성의 고민을 섬세하게 그린 점이 인상 깊었어요. 그런데 재독했을 땐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번에는 주인공의 선택 앞에서 저 스스로의 삶을 비춰보게 됐어요. 삼독을 했을 땐, 다중우주 속의 또 다른 나를 떠올리며, 인생의 선택지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무수한 선택지를 나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짊어지고 산다는 것도 인식하게 되었죠. 저는 이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으며 정리, 확장, 관계 — 세 방향을 모두 경험한 셈이었어요.

좋은 글은 그렇게 관계를 다시 조립하며 스스로를 새로 만듭니다. 정리된 사유가 다시 흔들리고, 확장의 결과가 다시 구조로 돌아오는 그 반복 속에서, 글은 완결되지 않은 채로 계속 살아 있습니다.

5.
좋은 글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한때의 나를 정리하고, 그 정리를 깨뜨려 확장하며, 다시 관계 속에서 갱신되는 순환. 글은 쓰일 때마다 새로 태어나고, 읽힐 때마다 또 살아납니다. 그래서 내가 믿는 좋은 문장은, 그 과정을 멈추지 않게 만드는 문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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