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쓰지 않은 물감이 있다
살다보니 많이 쓴 물감도 있다
하늘을 칠할 때 하늘색으로 칠했다
마음에 담긴 하늘의 색이 때마다 달라도
여전히 쓰지 않은 물감이 내게 있다
재능이라 믿었던 어떤 것을
취향으로 꺾은 후 깨달은 것이 있다
한때의 찬란함은 쉬이 비참함이 된다
영영 쓰지 않겠단 고집을 남긴 채
하늘을 메운 까마귀떼를 위해
한낮도 어둠으로 칠해야 할 때가 있다
평화의 오후일수록 그늘이 필요하다
쉬는 이에게 어둠은 포근한 색이고
우는 이에게 빛은 창피한 그림자니까
어떤 산책이 누군가에겐 질주이므로
잃은 방향은 방황으로 찾기로 하자
잠시 멈추거나 서성거려도
잠시 이 색깔이어도 괜찮다, 괜찮다
하늘은 하늘색으로 칠하면 되는 것
-
조용한 열정 / 사랑하고 선량하게 잦아드네
유수연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