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찾는 모험
낭만을 찾는 모험
2025.12.01
Stevenson·⌛16분

보들레르는 〈취하라Enivrez-vous〉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일부를 인용한다.

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그대의 어깨를 짓누르고, 땅을 향해 그대 몸을 구부러뜨리는 저 시간의 무서운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쉴새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술에, 시에 혹은 미덕에, 무엇에나 그대 좋을 대로. 아무튼 취하라.
(《파리의 우울》(2015). 99쪽)

1864년 2월 7일,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Le Figaro》에 처음으로 발표된 시다. 주해에 따르면, "도취가 항상 자아집중에 이르는 것은 아니"며, "술과 시와 미덕에 의한 도취는 때때로 자아집중의 긴장을 회피하는 수단일 때가 많"다고 한다. 물론, 당연하게도 이런 거창한 생각을 갖고 떠난 모험은 아니었지만, 피우고 취하는 낭만을 찾아 친구들과 2010년대에 겪은 내 모험을, 이백육십 년쯤 지난 지금에 하나 풀어놓는 것도 낭만이겠다. 이 시를 발표하고 삼 년 뒤 보들레르는 죽었지만, 그의 시에 담긴 시적 정취-낭만은 아직 살아 숨 쉰다.


얼마 전 집에 널브러진 잡동사니들을 정리하다, 십오 년 전쯤 어디선가 받아온 명함을 하나 발견했다. 상호와 사장의 이름, 남대문시장 중앙상가 C동지하 3번출구앞이라는 위치, 점포와 휴대전화 번호, 계좌로 그만인 단출한 명함. 이미 받을 때부터 꽤 오래전에 만든 명함 같았다. 색이 세월이 지난 지금이나, 받았던 때나 비슷하게 희멀겋다. 빛바랜 색조에 016으로 시작하는 번호가 더욱 정취를 더한다. 정체불명의 숲 사진이 희뿌옇게 배경으로 깔린 그 명함을 다시 본 2025년에, 나는 은은한 노스탤지어를 느낀다.

모 수입품 상점의 명함

도깨비시장이라고도 불리던 그곳은, 구역별로 나뉘어 출처 불명의 수입품을 잔뜩 쌓아놓고 파는 점포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다. C동의 품목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뉘는데 의약품, 외국 담배, 그리고 양주이다. 보통 함께 접할 수 없는 세 품목의 조합이 흥미를 더한다. 따지고 들자면 하나하나가 약사법, 관세법, 주류법…. 그래서 주인들은 사진이라도 찍을라치면 잔뜩 경계하거나, 성질을 내기 일쑤다. 그 기세가 흉흉해 마치 판타지 세계 속 던전Dungeon 같다. 동대문 패션타운이나 용산전자상가와 비슷한. "손님 맞을래요?"라는 인터넷 경구가 괜히 떠오르는.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이 남대문 던전에 낭만을 얻으려 숱한 모험을 하던 나와 내 동료들이 있었다.

우리가 찾던 건 맨 앞을 제외한 두 가지. 먼저 담배다. 요즘에야 편의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럭키 스트라이크와 세븐 스타, 말보로 아이스 블라스트 등을 접하는 건 그땐 신선한 경험이었다. 당시엔 한국에서 팔지 않는 담배를 맛보려면, 해외여행이 아니고서야 그곳이 유일한 선택지였다. 디스 플러스가 2,100원, 말보로가 2,500원 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대학 동기의 손에 이끌려 처음 가 본 그곳에서 한 갑에 사천 원이나 오천 원 정도 하는 비싼 가격을 감수하며, 흡연 경고 문구가 일본어로 적혀 있는 담배를 이것저것 많이도 사 왔었다. 손에 쥔 담뱃갑에는 한자에 익숙지 않은 나도 맥락의 도움을 받아 바로 읽을 수 있는, 면세免稅 표기가 참으로 당당했다. 더 짜릿한 멘톨 향과 더 묵직한 타격감을 주던 (불법) 담배들. 뭐 좋은 거라고, 무슨 선진 문물이라도 전파하는 것처럼, 나는 같이 서울에 온 고학생인 친구들을 그곳으로 데려가곤 했었다. 서너 갑을 사면 사장이 인심 쓰듯 두세 개피씩 주던 맛보기용 담배를 시장 어귀에서 피워 보며 어찌나 즐거워했던지. 참 고고한 "미덕"을 피우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폐를 망치는 낭만을 호사롭게 누리며 "시간의 무서운 짐"을 애써 외면하다 보면, 이따금 무리 중에 좋은 과외나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은 자가 이따금 생겼다. 누군가 푼돈이라도 쥐는 날은 곧 남대문에 가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담배보다는 더욱 비싼 걸 사러 가는 날이다. 불법에 동참하려면 현찰은 필수. 당시엔 영업시간 외에는 ATM 수수료가 무료인 게 드문 시절이었다. 저녁에 들어온 과외비를 얼른 뽑아두고 싶은 마음에, 학교 안에 있는 은행에서 학생증 카드로 현찰을 십오 만 원쯤 뽑는다. 그러면 공짜였다. 공략 준비가 착착 되니 괜히 뿌듯하다.

스물한 살의 나는, 가끔 본가에서는 빛을 못 보고 찬장 깊숙이 잠자고 있던 헤네시 XO와 로열 살루트 같은 걸 서울까지 보부상처럼 가져오곤 했다. "할 거면 제대로 해라"는 모친께서는, 마찬가지로 주방에 잠자고 있던 아이스 버킷과 얼음 집게까지 챙겨 주셨다. 그런 게 대체 왜 집에 있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비좁은 내 자취방에 어울리지 않는 본격적인 도구로 삼삼오오 모여 마시거나, 혹은 친구들과 단골 술집에 귀중한 술병을 감싸안고 가 콜키지를 했다. 조숙한 낭만이었다. 그러나 함께 마실 입은 많았고, 술은 늘 부족했다. 벌이에 비해 쓸데없이 입이 고급이 된 우린, 파티원들을 모아 남창동에 자리한 던전으로 가슴 뛰는 모험을 떠날 동기가 충분했다. 그곳은 불법에 동참하는 만큼, 위스키를 싸게 살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남던 ㄱ 글렌피딕 15년 하나 사러 가자 과외비 들어옴"
"몇 시?"
"2시 ㄱ"
"ㅇㅋ"
"XX점(보통 담배를 사던 곳이다) 들러서 먼저 럭스(럭키 스트라이크) 몇 갑 사자"
"역시 배우신 분"

이런 시답잖은 문자를 주고받으며 보통 두셋 정도의 파티원과 함께 회현역에서 만난다. 정찰제(?)인 담배와 다르게, 양주 구입이라는 미션은 좀 더 공략법을 숙지하는 것이 필요했다. 우리는 부르는 게 값인 지하 상가에서, 미숙한 실력으로 던전의 괴물과도 같은 상인들과 흥정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2010년대 중반을 지나서야 남대문 주류 가격 리스트라는 제목의 구글 스프레드시트 파일이 돌기 시작했고, 우리를 애먹게 하던 정보 비대칭은 많이 해소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처음 모험을 떠나던 그땐 정말로 게임 속 던전을 공략하듯, 주인과 기싸움하며 밀고 당기는 과정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일부러 여러 점포를 다 돌아다니며 같은 상품의 가격을 물어보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시장 조사로 일이만 원이나마 깎는 과정이야말로 모험이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어리고 모자란 우린, 분명 노회한 상인들에게 덤터기를 썼을 거다. 그러나 던전 공략의 무용담을 회고하며 나초 따위와 곁들여 먹던 싱글 몰트, 코냑 등은, 잠시나마 "시간의 무서운 짐"을 잊는 순간이 되어 주었다.

"오늘 XX상회 아지매한테 만 원이나마 깎았네."
"그래도 자주 가니까 이제 우리 얼굴 아는 듯."
"글렌피딕 15년을 12년 가격에 살 수 있으니 우리가 남던을 못 끊네."
"병입은 아니겠지?"

당시 돌던 흉흉한 소문으로, '병입'이라고 하는, 병만 비싼 블렌디드 위스키(발렌타인 등)의 것을 쓰고, 비슷한 색상과 맛(!)의 저렴한 양주를 담아 파는 짓거리도 횡행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남던(남대문 던전) 지하에 양조장 있는 거 몰랐나?"라며 냉소했다. 인터넷 후기라 물론 신빙성이야 떨어지지만, 남대문 지하의 독립 병입 업자(?)들의 블렌딩 실력이 오히려 출중하다고 치켜세우는 사람이 드물게 있기도 했다. 블렌디드 위스키가 맥아세 인상에 반발한 스코틀랜드 양조업자들의 밀주 제조에서 비롯되었음을 생각하면, 남대문 수입상들도 조세 저항의 의미로 장인정신을 발휘한 건… 아닐 테지. 다행히 내 몸이 아직 멀쩡한 걸 보면, 그래도 마시는 이의 건강까지 해칠 정도의 높은 비양심이 함유된 메이드 인 코리아 스카치를 마시진 않은 듯하다.

명함을 발견한 날, 옛 던전 공략 전우에게 찍어 보내며 나는 "우리들의 벨 에포크였다"라고 이야기했다. 아름다운 시대로 보통 번역하는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우리가 불법 수입품에서 낭만을 찾던 시절 또한, 역사에 기록된 그 시기가 그러하듯 실상 매우 야만적이었기에, 더욱 벨 에포크라 불러 마땅하다고 친구는 촌평했다. 덧붙이면, 그이는 지금 결혼 후, 담배는 끊었으며, 술도 잘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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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nson
안녕하세요. Stevenso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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