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2025.12.01
반다이·⌛12분

초등학생 때 살았던 집이 종종 꿈에 나옵니다.
다 큰 성인의 몸을 가진 제가 그때의 그 집에서 지금 내 집인 것마냥 돌아다닙니다.

살면서 이사를 네 번 했습니다. 지금 집이 매매로 왔기에 마지막 집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태어나길 주택에서 태어났고,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아파트로 이사했습니다.

"우리 이제 이 아파트로 이사 올 거야"
"엥? 이런 코딱지만 한 집에서 어떻게 살아"

원래살던 주택은 집이라기보단 골목 안에 있는 작은 가게였습니다. 건강원을 했었고, 건강원 바로 뒤에 집이 붙어있었습니다. 저희는 그 집을 '뒷방'이라고 불렀고, 거실 하나, 방 두 개가 전부였어요. 보통 집이 다 그렇지 않나? 아니요. 정말 '전부'였습니다. 화장실이 없었거든요.

1층에 있는 술집에 가면 가끔 이런 화장실을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열쇠 들고 나가서 왼쪽으로 가시면 철문 열고 있습니다.' 그 화장실이 저희 집 화장실이었습니다. 공용 화변기. 물탱크가 위에 있고, 줄을 잡아당기면 물이 내려갔습니다. 세면대는 없고요. 손은 다시 가게로 돌아와 싱크대에서 씻어야 했습니다. 한밤중에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팔뚝만 한 후레쉬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간 다음 화장실에 가야 했습니다. 어렸을 때의 저는 어둠이 무서워서 자고 있던 언니를 흔들어 깨워 화장실을 같이 가달라 하곤 했습니다. 한겨울이면 물탱크가 얼어서 물이 안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럴 땐 물을 따로 끓여와서 녹이곤 했죠.

그래도 샤워하는 곳은 있었습니다. 안방 한쪽에 벽을 뚫어 가벽으로 된 욕실 아닌 욕실이 있었습니다. 벽은 타일 없이 생 시멘트 덩어리고, 천장은 골덴처럼 울퉁불퉁한 조립식 철판 지붕이 '얹어져' 있었습니다. 벽과 지붕 사이는 구멍이 뻥 뚫려 있어 여름이건 겨울이건 바깥과 온도가 같았죠. 욕조도 세면대도 샤워기도 없이 벽에 수도꼭지 단 두 개. 뜨거운 물, 차가운 물. 큰 대야에 반반 틀어놓고 미지근한 물을 받아 바가지로 퍼서 양치하고,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았습니다. '으으 추워~' 하고 따뜻한 물을 몸에 부으면 그만이었으니까요. 제일 문제는 뻥뻥 뚫린 벽 사이로 들어오는 곱등이들이었습니다. 저녁에 씻으러 문을 열면 최소 세 마리 이상이 저를 반겨주거나, 안방으로 푱 하고 튀어 올라 들어왔거든요. 밟아 죽이고, 뜨거운 물을 부어 삶아 죽이고, 책을 던져 죽이고, 벽으로 쫓아낸 후에 다시 가까이 오기 전까지 후딱 씻고 나가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저희 5인 가족 모두에게 집에 대한 로망을 물으면 "화장실이 멀쩡한 집."이라고 공통 대답을 합니다. 화장실만 평범하면 어디든 상관없다는 얘기입니다.

혹시 이게 몇 년도 이야기 같으신가요? 저는 현재 스무 살 중반이고, 제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의 이야기입니다. 무려 그 유명한 대구 '수성구'에 있었습니다. 자다가 일어나면 머리맡에 지네가 기어다니고, 집 안에 개미집이 있어서 집 벽 곳곳에는 개미가 줄지어 돌아다니기도 하고요. 책장 뒤에 벌집이 생겨 제거한 적도 있고, 가게 하수구에서 주먹만 한 쥐가 나온 적도 있습니다. 파리인 줄 알고 걸리적거려서 손으로 쳐냈더니 벌이었던 기억이 있네요. 미역국에 들깨를 넣어 끓여두면 국에 떠 있는 게 들깨인지 붉은 개미인지 구분이 안 갔습니다. 너무 많으니 하나하나 건져내기도 귀찮아서 그냥 먹었습니다. 식당 음식에 벌레가 들어가도 딱히 컴플레인을 걸지 않는 성격이 된 건 그 때문이겠죠.

너무 인상 깊게 살아서 그런가 제 꿈에서 '집'이라는 곳이 나오면 백이면 백 그때의 그 집으로 나왔습니다. 아니면 그냥 아파트에서 산 시간보다 그 집에서 지낸 시간이 더 길어서 그런 걸까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꿈에선 항상 그 집에 있으면 행복했거든요.

그 작은 몸집으로 건강원과 뒷방만이 '집'이 아니라, 가게에서 나와서 뒷방으로 들어가는 길, 뒷방에서 나와서 화장실로 가는 길, 가게 앞 차 한 대 들어가는 주차자리, 맞은편 망한 가게 건물의 옥상, 맞은편 가게와 옆 주택 사이에 있는 인도들까지 전부 저의 '집'이었거든요. 초등학생 때의 저의 '집'은 몇 평이나 됐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32평 아파트더러 "코딱지만 해"라고 했겠죠.

가게 앞에서 학교 리코더 수행평가 연습을 했던 일이나, 부모님을 도와 한약 배달 따라가서는 효녀인 척하며 나이 많은 손님들께 용돈을 받아내기도 했고요. 눈이 온 날엔 집 앞옆으로 눈사람을 만들어 두거나,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서 산업용 냉동실에 넣어두기도 하고, '우리 아파트로 이사가면 이렇게 못 있어'라는 말과 함께 산업용 전기세의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이불 덮고 자는 사치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층간 소음 걱정 없이 집 안을 쿵쿵 뛰어다니며 놀았던 거나, 옆집의 마당 강아지가 대문 밑으로 코만 빼꼼 내밀고는 킁킁거리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가게 앞 마당에서 숯으로 장어를 구워 먹었던 건 아직도 그립습니다. 어떤 장어를 먹어도 그때의 맛은 안 나더라고요.

골초인 아빠에게 담배가 맛있냐고 물었더니 초등학생인 저에게 한 모금 주셨던 기억도 납니다. 엄청나게 콜록거리며 그 뒤로는 담배가 보일 때마다 가위로 자르고 다녔습니다. 좀 어이없긴 한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렇게 될 걸 알고 주셨던 것 같네요. 건강원 소파에서 화투패를 알려주던 아빠의 모습도 기억납니다. 화투는 저희 집 연말 이벤트거든요. 요즘은 각자 독립하고 바쁘다 보니 오래 모여있기가 어려워서 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일주일 내내 새벽같이 놀았는데….

그렇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냐 묻는다면... 절대 싫습니다. 적어도 실내에서 샤워하고 볼일 보고 싶거든요. 그때의 좋았던 기억만 쏙 빼먹는 겁니다. 싫었던 기억도 지났기 때문에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거고요. 열악했던 시절도 이제는 남(과거의 나)의 일이라 정말 별 감정 없이 얘기합니다.

낭만이란 단어에 왜 그 집이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집을 추억하는 건지, 어렸던 나를 추억하는 건지, 다 같이 어렸을 때의 우리 가족을 추억하는 건지.... 미화된 '추억 보정'일 수도 있고요.

뭐가 됐든 꿈에도 매번 나오는 걸 보면 저의 낭만은 그곳에 있나 봅니다.
다들 이런 추억이나 장소 하나쯤 갖고 계시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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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다이
안녕하세요. 반다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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