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좋아합니다. 소주, 맥주, 막걸리, 고량주, 위스키, 보드카, 럼, 데킬라, 와인, 칵테일, 사케....
“무슨 술 좋아하세요?”
“알코올램프 빼고 다 마셔요.”
소맥은 소주와 맥주 1:1이 황금 비율이고, 고량주 조금과 맥주를 섞어 고맥을 만들면 약간의 파인애플 향이 나는 것이 맛있습니다. 소주, 맥주, 사이다를 0.5:1:1로 섞으면 소주를 싫어하는 사람도 쉽게 마실 수 있는 밀키스주가 되지요. 같은 소주라도 맛있는참, 참이슬, 대선 등등 모두 맛이 다르고, 맥주도 카스, 테라, 하얼빈 등등 맥주마다 맛이 다 다릅니다. 소맥을 했을 때도 서로서로 어울리는 술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소맥 마실 땐 테라보다는 카스고요. 고맥은 하얼빈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종류도 비율도 조금만 달라도 맛이 확확 변하는 것이 매력적이죠.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칵테일에 꽂혀 있습니다.
고급스러운 바에 가서 술을 부탁합니다. 하지만 한 잔에 십만 원 넘는 사치는 부리지 못해서요.
“여기 쓸쓸함 한 잔 주시오”
“잔당 이만 원 하는 이 위스키는 어떠신지요”
“내 쓸쓸함은 오천 원을 넘지 않아”
“가서 생맥주 하나 가져와 봐” - 삼성카드 광고中
제 쓸쓸함은 많이 봐줘서 2만 원 언저리 같습니다. 위스키는 잔으로 사 마실 바엔 바틀을 산다는 마음이라, 집에서는 마실 수 없는 칵테일을 주로 마십니다. 같은 종류의 칵테일이라도 바텐더마다 맛이 다 다른 게 재밌습니다. 같은 종류의 같은 술을 쓰더라도 재료를 넣는 타이밍, 얼음의 양, 술을 섞는 횟수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나옵니다. 바텐더들의 센스와 서비스도 좋고 분위기도 좋습니다. 말 그대로 가격값을 하는 공간입니다.
막 스무 살이 된 제자를 바에 데려간 적이 있습니다.
“와, 영화에서만 보던 곳 같아요!”
졸업하고 몇 년 만에 보는 동기들과 소주를 마셨습니다.
“쟤 요즘 비싼 거 먹더만. 우리처럼 이런 거(소주) 먹는 애들이랑은 급이 다름”
바를 가지 않는 사람들에겐 바라는 공간이 뭐 이런 이미지인 듯합니다. 격식 있는 곳, 멋진 곳... 비싼 곳은 맞는 것 같네요.
그렇다면 바는 정말 멋진 사람들만 모이는 공간일까요. 바에서 고독을 즐기며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멋있는 사람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겉만 번지르르하게 포장된 썩어 가는 고깃덩어리 같습니다. 일단 저부터요.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게 어렵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있는 상태로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예 안 친하거나, 정도 없이 친해지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 거리감이 너무 불편해서 친구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바에서 바텐더라는 말동무를 구합니다. ‘바텐더’와 ‘손님’이라는 거리감 안에서 친하게 대화합니다. 그 거리감이 저에겐 베스트거든요. 술도 좋아하고, 말동무도 있고, 분위기도 좋고, 안 갈 이유가 없습니다.
대화할 친구 없이 혼자 바를 다니다 보니 손님들 구경하는 시간도 많습니다. 바텐더들이 열심히 일하다가 제 앞에 와서 한숨 돌리고 다시 가는 친밀감도 좋습니다. 바텐더들의 하소연을 듣기도 하고, 직접 구경하기도 하고, 손님들께 말이 걸리는 경우도 꽤나 많습니다. 번지르르하고 무해해 보이는 사람들이, 혼자 오는 젊은 여성이 그렇게도 궁금한가 봅니다.
“왜 혼자 있어요? 안 쓸쓸해요?”
저한테 직접 묻지 못하고 바텐더에게 저에 대해 묻는 경우도 몇 번 있었습니다. 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이길래 혼자 와서 술 먹지 싶겠죠. 거기다 보통 화장기 없이 백수 차림으로 가거든요.
저에게 직접 묻고 말동무를 하다 가시는 분들 중 반틈은 그냥 성격 자체가 외향인인 듯하고, 나머지 반틈은 본인을 위해서 말을 거신 듯한 느낌이 듭니다. 기본적으로 다들 한잔한 상태기도 하고요. 혼자 있는 제가 외로워 보여서가 아니라 본인의 외로움을 달래듯이 말을 거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게 참 뭐랄까요. 슬픕니다. 그 자리에서는 웃으며 얘기하고 연락처도 주고받지만 그 뒤로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삶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요.
바텐더에게 잘난 척하는 사람, 바 자리에서 진득하게 키스하는 중년 커플, 스무 살은 차이 나는 어린 여자를 데려와서 어루만지는 아저씨, 남 뒷담으로 시작해서는 MBTI 중 T들을 모조리 사이코패스라며 진지하게 욕하던 사람(제가 T여서 흥미진진하게 들었습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슬프기만 한 바텐더들의 시급과 취급들.... 덕분에 바텐더에 대한 로망과 낭만이 갈기갈기 찢긴 채로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는 받아 주지 않는 성격을 바텐더에게 일방적으로 토해 내는 사람들이 많이 계시고, 와이프와 자식이 있는 사람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바에 오시는 분도 계시고, 남자 소변기에 구토를 하는 사람도 있고, 매장에서 자는 손님을 함부로 깨울 수 없어서 경찰을 부르기도 하고, 수상할 정도로 현금 다발 고액 결제를 하는 손님은 어둠의 경로에서 일을 하는 사람인 경우도 있습니다.
알고 싶지 않은 것까지 알고 나니 사람 사는 건 어딜 가나 다 똑같구나 싶습니다. 청춘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도 많은 만큼 안타까운 사람도 많은 것 같네요.
"바는 그래도 조금 격식 있는 사람들이 가는 줄 알았는데…."
네, 아닙니다.
그러니 비싼 술을 마시고 다니든, 오마카세를 가든, 해외여행을 다니든, 매일 낭만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여도 굳이 부러워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보통 좋아 보이는 면만 보여주기 나름이니까요. 오히려 '낭만'을 쫓아 힘든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상상 이상으로 훨씬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부러운 삶'은 몇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니 살기 위해서 '낭만' 같은 걸로 도피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사치가 되었든, 감상이 되었든, 추억이 되었든, 사랑으로든, 일탈이든…. 당장의 터질 것만 같은 스트레스를 죽여버리는 것에 도움이 되니까요.
요즘 같은 시대엔 낭만을 챙기는 건 어쩌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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