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한 가지
내가 아는 한 가지
2025.12.01
우디·⌛53분

(2차 수정본 12/16 04:31)

어렸을 적을 생각하면 소풍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봄이나 가을,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선선한 계절이면 어김없이 소풍을 갔다. 저마다 도시락을 들고 와 누구 도시락이 더 맛있나 내기라도 하듯 삼삼오오 모여 뚜껑을 열어본다. 한 친구의 도시락에는 돈까스가, 또 다른 친구의 도시락에는 분홍소시지, 계란말이, 동그랑땡 같은 반찬이 들어 있기도 했다. 형형색색의 과일이 곁들여진 도시락도 있었다. 각각의 도시락이 펼쳐질 때면 나는 괜히 작아지곤 했다. 나에게 소풍날은 설렘을 주는 동시에 가장 싫은 날이었다. 소풍을 가는 날이면 나는 도시락 없이 빈손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사정을 아는 친구의 어머님이 내 몫까지 챙겨주시거나, 선생님이 조심스레 도시락을 나눠주시곤 했다. 너무 감사하면서도 그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는 내 모습이 너무 슬펐다. 어머니의 부재는 그렇게, 내 앞에 놓인 도시락으로 다가왔다.

알림장을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준비물 같이 사소한 정보를 놓치지 않고 챙기는 데에는 꼼꼼한 어머니의 능력이 더 필요했으니까. 평소에는 잘 지내던 나도, 무언가 빠뜨린 날 만큼은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을 얄궂을만큼 선명하게 깨달았다. 그런 날은 소풍날만이 아니라 다른 때도 한 번씩 찾아 왔다.
운동회도 비슷했다. 어머니의 자리는 늘 할머니나 고모가 대신했고, 가끔 아버지가 와주신 날도 있었지만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지 않는걸 보면 어머니의 부재를 채울 수는 없었나보다.

머리가 조금 크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냥 혼자 있는 편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갓난아기 때부터 사라진 어머니를 그리는 건 어린 나이에 참 힘든 일이었다. 다른 친구들에겐 당연히 있는 존재가 왜 나에게만 없는지, 그 가혹함을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 어렸다. 기억도 추억도 없지만 머릿속에서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상상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현실이 될 순 없었다.

그러다 첫사랑, 나에게는 처음으로 현실로 둘 수 있는 이성이 생겼다. 내 편이 생겼다는 생각에 옆에 있는 것만으로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그래서 였을까, 첫사랑은 내게 처음으로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다. 뜨거운 여름 부산 바다를 보러 갔던 날, 장미 축제가 열린다 해서 갔던 날, 내일로 티켓을 끊고 전국 기차여행을 갔던 날, 강원 탑랜드에서 번지점프를 했던 날까지. 이 때까지만 해도 내 힘으로 이런 날들을 지켜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나는 다른 사람처럼, 입대한다고 헤어지자는 말은 못 하겠다. 그냥 기다려줘. 나는 너랑 결혼할래.”

군입대 지원을 하고 발표가 나던 날,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 애는 “군대 가라는 말은 장난이었는데, 현실로 만들어버리면 어떡해” 하면서 울어버렸다. 군 생활이 지속될수록 관계의 불안함은 더 커져 갔고, 미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다툼은 늘어났다. 우리가 함께 쌓은 추억은 현실을 이겨낼 힘이 없었다. 결국 일병 위로휴가를 나왔던 날 이별 통보를 받았다. 지난 추억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같이 보냈었던 모든 시간들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차갑게 나에게 이 말이 던져졌다.

“사랑을 구걸하지 마.”

어머니처럼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존재가 늘어났다. ‘돌아보면 좋은 추억이다’ 라는 말은 힘이 되지 않았다. ‘그래봤자 기억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말과 똑같이 느껴졌다. 머릿속의 기억들은 현실에선 아무런 힘이 없었다. 불현듯 꺼내지는 좋았던 기억들은 현재의 내가 많이 달라졌고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만 상기시킬 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감정에 예민해졌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쉽게 흔들리고, 누군가를 잃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조여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사람들이 내 옆에 머무르고 떠나길 반복했다. 부재는 아무리 반복되어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또 다시 내 옆에 한 사람이 머무르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도 그 사람은 누군가에게 평온함과 안정감을 주는 따뜻한 사람일 거라고 다들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람은 아이러니 하게도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게다가 나와는 아주 많이 다른 사람. 하루는 그 사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싶어서 이렇게 물었다.

“왜 고민과 힘든걸 이야기해 주지 않는거야? 표정에는 힘든게 다 써져있는데?”
“그걸 왜 나눠야 하지?”
“그야 힘든걸 나누면 반이 되니까. 이야기를 털어 놓다보면 마음이 조금 편해질거라 생각해.”
“…힘든 걸 나누면 힘든 게 두 개가 되는 거야.”

내가 강제적으로 누군가를 잃은 철창 속에 갇혀 있던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뭔가 얼음 속에 스스로를 가둬 놓고 냉기로 다가올 수 없게 만드는 사람이랄까. 함께 나누는 모든 감정들이 이 사람에게는 부담이 되는걸까? 차가운 말들속에서 상처를 받아 먼저 이 관계를 놓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또 다시 반복될 부재를 견딜 자신이 없었기에 질문을 던졌다.

“내가 불안해 하지 않게 한마디만 해줄수 있어?”
“음… 보고 있지 않는 날도, 많이 보고 싶을거야.“

마음을 얼려 놓고 꽁꽁 감추었던 사람에게서 나온 한마디는 강력했다. 이 한마디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차갑고 날선 얼음들을 만들어 둔 것은 어쩌면 옥석가리듯 가벼운 사람들을 가리기 위해서였을까? 그때의 한마디에서 아프지만 누군가 녹여주길 바라는 마음을 느꼈다. 처음으로 내 옆자리를 채우기보다 다른 사람의 옆자리를 채워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재라는 단어로 만든 감옥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지금 이 사람을 만나는 마음은 첫사랑을 만나던 때와는 다르다. 설렘과 기쁨만이 낭만이라 생각한다면 차가운 마음을 느낄때 낭만은 힘을 잃어버린다. 차가움을 굳건히 견디며 곁을 지켜내다 보면, 차가움이 녹아내리는 순간에서 낭만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이 사람은 기억 저편으로 흘러가지 않았으면 한다. 뭐든 함께 하지는 못하더라도, 곁에 있고싶다. 언제 녹을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다. 차가운 냉기를 피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맞아서 녹여내고 싶다. 옆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면 말이다. 힘들고 슬프고 괴롭더라도 서로의 옆에 있었으면 한다. 나의 낭만이 이 사람에게 전해지면 좋겠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과 모든 걸 공유하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무작정 두려워하지는 않기로 했다. 추울 때나 따뜻할 때나 이 사람을 만나고부터 알게 된 모든 시간을 언제까지나 꺼내보고 싶다. ‘함께’라는 낭만 속에서.

(참고용)
나는 혼자가 편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나에게 소풍은 설레지만 동시에 가장 싫은 날이었다.
도시락 없이 빈손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
돈까스, 소세지, 계란, 과일.. 형형색색 도시락이 펼쳐질 때면 나는 괜스레 작아졌다. 때때로 사정을 아는 친구 어머님이 내 몫까지 챙겨주시거나 선생님이 조심스레 도시락을 나눠주시곤 했는데, 감사하면서도 그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는 내 모습이 괜히 슬펐다. 어머니의 부재는 그렇게 내 앞에 놓인 도시락으로 다가왔다.

평소에는 그럭저럭 잘 지냈지만 소풍이나 운동회처럼 무슨무슨날만큼은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이 얄궂을 만큼 선명해졌다. 어머니 자리는 늘 할머니, 고모가 대신했고, 가끔 아버지가 와주신 날도 있었지만 그리 기억에 남진 않는다.
머리가 조금 굵어지고부터는 그냥 혼자가 편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당연히 있는 존재가 왜 나에게만 없는지, 그 가혹함을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다.

잠시지만 '누군가와 함께여도 괜찮지 않을까' 했던 적이 있긴 했다. 스무살 즈음, 첫사랑을 만나고부터였다.

그저 옆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했다.
혼자가 편했던 나에게 그녀는 점점 함께이고 싶은 사람, 잃기 싫은 사람이 되었다. 내 친구의 친구를 좋아했던 그녀. 그 마음을 돌리기 위해 매일매일 느꼈던 감정들을 일기처럼 써서 건넸다.
한 달 반의 구애 작전. 평생 쓸 편지를 그때 다 썼을 거다.
편지를 건네지 않는 날이면 "오늘은 왜 편지 없어?"란 말이 돌아올 정도였으니.

그녀와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뜨거운 여름의 부산 바다와 장미 축제, 내일로 티켓과 함께한 전국 기차여행, 강원 탑랜드에서의 번지점프까지.. 싸우고 삐진 채로 "군대나 가버려라"라고 말했었는데, 정말 군입대 발표가 나자 "그때는 장난으로 말했는데 현실로 만들어버리면 어떡해!" 하며 울음을 터뜨리던 그애가 생각이 난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입대한다고 헤어지자는 말은 못 하겠다. 그냥 기다려줘. 너랑 결혼할래."

철없이 뱉은 그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많이 다투기도 했던 그 친구가 옆에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천만다행으로 가까운 지역에 자대를 배치받았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점점 더 냉랭해졌다. 변해가는 태도. 멀어진 거리와 전처럼 연락이 어려운 환경이 그녀에겐 꽤 큰 일이었던 것 같다.
우리가 함께 쌓은 추억은 '현실'을 버틸 힘이 없었다.
1년이 지나 일병 위로휴가를 받아 나온 당일, 나는 이별통보를 받았다.

"사랑을 구걸하지 마."

우리의 추억은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그녀와 같이 보낸 모든 시간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또 혼자가 되었다.

더 움츠러들었다. 어머니처럼,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존재가 늘어나는 것이 더 두려워졌다.
그 이후 나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감정에 예민해졌고 누군가를 잃는다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사람들이 내 옆에 머무르고 떠나길 반복했지만 그 느낌은 여전했다.

"아니, 내 힘든 걸 당신과 왜 나눠야해?"

하지만 이 사람, 뭔가 좀 다르다. 지금 내 옆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함께'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한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내 생각을 털어놓자 '무슨 쓸데 없는 소릴 하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흘겨보는 사람.

"왜 고민과 힘든 걸 나한테 얘기하지 않는 거야? 표정에 힘든 게 다 써져있는데?"
"그걸 왜 나눠야 해?"
"그야, 힘든 걸 나누면 반이 되니까..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털어놓다보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
"아니? 힘든 걸 나누면 힘든 게 나눠지는 게 아니라 두 개가 되는 거야."

그동안 만난 사람들과 헤어진 이유도 따져보면 "더 이상 서로 함께할 좋은 감정이 없으니 우린 이제 헤어져야겠다."였다. 하지만 이 사람은 좋은 감정도, 슬픔도, 힘듦도 나에게 짊어지게 하려 하지 않는다.

뭐든 혼자 척척 잘 해내고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다" 말하며 관계를 일종의 억압처럼 느끼는 사람. 내가 부재不在의 철창 속에 갇혔던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얼음 속에 스스로를 가둬놓고 냉기로 다가올 수 없게 만드는 사람처럼 느껴진달까?

어떨 땐 '나와 함께하는 모든 것이 이 사람에게 부담인걸까?' 생각까지 들었다. 같이 무엇을 하지 않는 모습, 냉기 가득한 말들로 상처받는 일도 더러 있었다. 그럴 때 나는 다시 불안해졌다.

"나는 당신이 불안해. 내가 불안해하지 않게 한마디만 해줘. 딱 한마디면 돼."
"...보는 날도, 보고 있지 않는 날도 많이 보고싶을 거야." 그녀는 나를 슥 한번 보더니 이내 특유의 냉정하고 심드렁한 투로 답했다.('이 자식 또 시작이네'란 표정이었달까)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이 흔해지는 게 싫다"며 마음을 꽁꽁 감추는 사람에게서 나온 이 한마디는 꽤 강력한 것이었다. 그 한마디에서 나는 아프지만 누군가 녹여주길 바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사람을 보는 내 마음은 첫사랑 때와는 다르다. 이 사람의 냉기는 어쩌면 옥석가리듯 가벼운 사람들을 가려내기 위해서 아니었을까?

뭐든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의 마음이 아주 차가워지더라도 곁에 있고 싶다.
언제 녹을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다. 차가운 냉기를 피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맞아서 녹여내고 싶다. 옆에서 지켜볼 수 있도록 이 사람이 허락해 준다면 말이다.

이 사람과 함께하면서, 역설적으로 나는 혼자여도 괜찮다고 꼭 상대와 함께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시간이 흐르면 관계는 때로 차갑고 냉랭해지며, 바로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헤어지고 멀어진다. 설렘, 기쁨 따위만 추구한다면 이런 차가운 마음을 느낄 때 버틸 수 없게 된다.

그 시간을 굳건히 버티고 곁을 지켜내다보면 차가움이 녹아내리는 어떤 순간이 온다. 어떤 사랑을 만나는 순간이 온다.

이 사람을 만나고 나는 그 순간을 '낭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과 모든 걸 공유하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무작정 두려워하지는 않기로 했다. 나의 낭만이 이 사람에게 전해지면 좋겠다. 추울 때나 따뜻할 때나 이 사람을 만나고부터 알게 된 모든 시간을 언제까지나 함께 꺼내보고 싶다.

(수정본)

어렸을 적 소풍의 기억이 떠오른다.
봄이나 가을,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선선한 계절이면 어김없이 소풍을 갔다.
저마다 도시락을 들고 와 누구 도시락이 더 맛있나 내기라도 하듯 삼삼오오 모여 뚜껑을 열어본다.
누구 도시락에는 돈가스가, 또 다른 친구의 도시락에는 분홍소시지와 계란, 몇 가지 반찬이 들어 있기도 하고, 과일이 곁들여진 도시락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소풍은 늘 설렘과 동시에 가장 싫은 날이었다.
형형색색의 도시락이 펼쳐질 때면 괜히 작아졌다. 소풍을 가는 날이면 나는 도시락이 없이 빈손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사정을 아는 친구의 어머님이 내 몫까지 챙겨주시거나, 선생님이 조심스레 도시락을 나눠주시곤 했다.
참 너무 감사하면서도 그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는 내 모습이 너무 슬펐다. 어머니의 부재는 그렇게 내 앞에 놓인 도시락으로 다가왔다.
알림장을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소풍 날짜나 준비물처럼 사소한 정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챙기는 건 아버지보단 어머니의 능력이 월등히 높으니까.
평소에는 잘 지냈던 나도, 소풍날만큼은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을 얄궂을 만큼 선명하게 깨달았다.
그런 날은 소풍만이 아니라 한 번씩 찾아왔다.

운동회 역시 비슷했다. 어머니의 자리는 늘 할머니나 고모가 대신했고, 가끔 아버지가 와주신 날 도 있었지만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지 않다.
머리가 조금 크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냥 누구를 부르기보단 혼자 있는 편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갓난아기 때부터 사라진 어머니를 그리는 건 어린 나이에 참 힘든 일이다.
다른 친구들에겐 당연히 있는 존재가 왜 나에게만 없는지, 그 가혹함을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 어렸다.
기억도 추억도 없지만 머릿속에서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상상만 할 수 있고 현실이 될 순 없으니까.

그러다 첫사랑, 나에게는 처음으로 현실로 둘 수 있는 이성이 생겼다.
내 사람이라는 생각에 옆에 있는 것만으로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그래서였을까, 첫사랑은 내가 ‘처음으로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내 친구의 친구를 좋아했던 그녀, 그 마음을 돌리기 위해 편지를 정성스레 적어서 그날 느꼈던 감정들을 일기처럼 써서 전달했다.
한 달 반의 플러팅, 평생 쓸 편지들을 첫사랑에게 다 썼던 것 같다.
편지를 주지 않는 날이면 “오늘은 왜 편지 없어?”라고 물어보기도 했으니 생각보다 꽤 자주 줬나 보다.
모든 게 처음이었다. 뜨거운 여름 부산 바다를 보러 갔던 날, 장미 축제가 열린다 해서 갔던 일, 내일로 티켓을 끊고 전국 기차여행, 강원 탑랜드에서의 번지점프까지.
싸우고 삐져서 “군대나 가버려라”라고 말했었는데, 정말 내가 군입대 지원을 하고 난 후 발표가 나던 날,
“그때는 장난으로 말했는데 현실로 만들어버리면 어떡해” 하면서 울던 그애가 생각이 난다.
입대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불안함은 더 커져 갔고, 미래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 부분은 늘 문제였다.
“나는 다른 사람처럼, 입대한다고 헤어지자는 말은 못 하겠다. 그냥 기다려줘. 나는 너랑 결혼할래.”
철없이 나왔던 그 말들은 모두 사실이었는데, 너무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현실에서 나와 함께 있던 그 애가 옆에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가까운 지역으로 빠져 자주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지만 현실은 달랐다.
점점 변해가던 그애, 떨어진 거리와 지금처럼 휴대폰을 반입할 수 없던 그때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꽤 큰 일이었나 보다.
우리가 함께 쌓은 추억은 현실을 이겨낼 힘이 없었다.
1년이 지나, 일병 위로휴가를 받아 나오던 날 이별 통보를 받았다.
“사랑을 구걸하지 마.”
차갑게 나에게 던진 말. 지난 추억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같이 보냈었던 모든 시간들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어머니처럼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존재가 늘어나는 것이 더 두려워졌다.
‘돌아보면 좋은 추억이다’라는 말은 ‘그래봤자 기억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과 똑같게 느껴졌다.
머릿속의 감정들은 현실에선 아무런 힘이 없다. 불현듯 꺼내지는 좋았던 기억들은 현재의 내가 많이 달라졌고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만 상기시킬 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감정에 예민해졌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쉽게 흔들리고, 누군가를 잃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조여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사람들이 내 옆에 머무르고 떠나길 반복했다.
그리고 지금,또 다시 내 옆에 한 사람이 머무르고 있다.
사랑을 하면 무엇이든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쁨은 물론이고 슬픔, 힘든 모든것까지.
여러 사람들이 많이 머물고 떠나면서 나에게 남긴것은 “좋은 감정이 이제 더 이상 남아있지 않으니 우리는 이제 헤어져야겠다.“ 였다. 하지만 지금 내 옆에 머무는 사람은 좋은 감정도 슬픔, 힘든 감정까지 나에게 짊어지게 하려 하지 않았다.

“왜 고민과 힘든걸 이야기해 주지 않는거야? 표정에는 힘든게 다 써져있는데?”
“그걸 왜 나눠야하지?”
“그야 힘든걸 나누면 반이 되니까. 이야기를 털어놓다 보면 마음이 조금 편해질꺼야!”
“….힘든걸 나누면 힘든게 두개가 되는거야.”

뭐든 혼자 척척 잘 해내고,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다 말하며 관계를 억압처럼 느끼는 사람.
내가 강제적으로 누군가를 잃은 철창 속에 갇혀 있다 나온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뭔가 얼음 속에 스스로를 가둬 놓고 냉기로 다가올 수 없게 만드는 사람.
많은 상처가 그 사람을 얼려 놓았을까?
함께하는 모든것들이 이 사람에게는 부담이 되는것일까?
같이 무엇을 하지 않는 모습, 차가운 말들속에서 상처받는 날도 많이 있었다.

“내가 불안해 하지않게 단 한마디만 해봐.”
“보고 있지 않는 날도, 많이 보고싶을거야.“

이 한마디가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쉽사리 사랑한다 말하지 않겠다고 나에게 말했던 사람.
사랑한다는 말이 흔해지는게 싫다던 사람. 마음을 얼려놓고 꽁꽁 감추었던 사람에게서 나온 한마디는 강력했다.
차갑고 날선 얼음들을 만들어 둔것은 어쩌면 옥석가리듯 가벼운 사람들을 가리기 위해서일까?
그때의 한마디에서 아프지만 누군가 녹여주길 바라는 마음을 느낀것 같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은 첫사랑 때와는 다르다.
뭐든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서로의 마음이 아주 차가워 지더라도 곁에 있고싶다.
언제 녹을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다. 차가운 냉기를 피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맞아서 녹여내고 싶다.
옆에서 지겨볼 수 있도록 허락해 준다면 말이다.

무엇 때문에 마음이 얼어 있다면 녹일 수 있는 힘은 옆자리에서 나온다 생각한다.
내가 알게 된 한 가지는, 낭만은 기뻤던 날들을 소중히하며 힘들 때 기쁨으로 피하는 게 아니라, 서리내리듯 차가운 마음들도 온몸으로 받아내서 그 옆을 굳건히 지켜내는 것이니까.

첫 시작은 모두 설레서 시작하겠지만, 시간이 서서히 흘러가면서 차갑고 힘든, 냉랭?해지는 순간을 견디지 못한다.
설레임과 기쁨만이 낭만이라 생각한다면 차가운 마음을 느낄때 낭만은 힘을 잃어버린다.
이 차가움도 낭만이다 생각하고 굳건히 곁을 지켜내다 보면 차가움이 녹아내리는 순간에서 낭만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

이 사람 또한 기억 저편으로 흘러가지 않았으면 한다.
같은 시간에서 좋은 일들과 그렇지 못한 일들이 함께 올 테지만, 힘들고 슬프고 괴롭더라도 서로의 옆에 있었으면 한다.
나의 낭만이 이 사람에게 전해지면 좋겠다. 이상적인 낭만이라 말할 수 없지만, 같이 있는 시간 속에서 뒤돌아서 아름답게 느꼈던 시간들을 같이 꺼내보고 싶다.
현실이라는 낭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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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어렸을 적 소풍의 기억이 떠오른다.
봄이나 가을, 덥지도 춥지도 않은 선선한 계절이면 어김없이 소풍을 갔다.
저마다 도시락을 들고 와 누구 도시락이 더 맛있나 내기라도 하듯 삼삼오오 모여 뚜껑을 열어본다.
누구 도시락에는 돈가스가, 또 다른 친구의 도시락에는 분홍소시지와 계란, 몇 가지 반찬이 들어 있기도 하고, 과일이 곁들여진 도시락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소풍은 늘 설렘과 동시에 가장 싫은 날이었다.
형형색색의 도시락이 펼쳐질 때면 괜히 작아졌다. 소풍을 가는 날이면 나는 도시락이 없이 빈손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사정을 아는 친구의 어머님이 내 몫까지 챙겨주시거나, 선생님이 조심스레 도시락을 나눠주시곤 했다.
참 너무 감사하면서도 그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는 내 모습이 너무 슬펐다. 어머니의 부재는 그렇게 내 앞에 놓인 도시락으로 다가왔다.

알림장을 챙겨줄 사람이 없었다. 소풍 날짜나 준비물처럼 사소한 정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챙기는 건 아버지보단 어머니의 능력이 월등히 높으니까.
평소에는 잘 지냈던 나도, 소풍날만큼은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을 얄궂을 만큼 선명하게 깨달았다.
그런 날은 소풍만이 아니라 한 번씩 찾아왔다.

부모님의 참관 수업이 있어서 학부모 중 한 분을 모셔오라는 선생님의 말을 들을 때면 그게 너무 싫었다.
아버지에게 알려봐야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아버지는 항상 나를 일보다 뒷전에 두셨고,
할머니에게 부탁해도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불과했다.
참관수업 날이면 다른 친구들의 어머니가 교실 뒤에서 조용히 서 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다.
애써 담담한 척했지만, 나의 수업을 보러 와주는 어른은 없었으니까.

운동회 역시 비슷했다. 어머니의 자리는 늘 할머니나 고모가 대신했고, 가끔 아버지가 와주신 날 도 있었지만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지 않다.
머리가 조금 크기 시작한 순간부터 그냥 누구를 부르기보단 혼자 있는 편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갓난아기 때부터 사라진 어머니를 그리는 건 어린 나이에 참 힘든 일이다.
다른 친구들에겐 당연히 있는 존재가 왜 나에게만 없는지, 그 가혹함을 이해하기엔 나는 너무 어렸다.
기억도 추억도 없지만 머릿속에서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상상만 할 수 있고 현실이 될 순 없으니까.

그러다 첫사랑, 나에게는 처음으로 현실로 둘 수 있는 이성이 생겼다. 내 사람이라는 생각에 옆에 있는 것만으로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그래서였을까, 첫사랑은 내가 ‘처음으로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내 친구의 친구를 좋아했던 그녀, 그 마음을 돌리기 위해 편지를 정성스레 적어서 그날 느꼈던 감정들을 일기처럼 써서 전달했다.
한 달 반의 플러팅, 요즘 스마트폰으로는 카톡으로 장문의 글 보내기 정도일까? 평생 쓸 편지들을 첫사랑에게 다 썼던 것 같다.
편지를 주지 않는 날이면 “오늘은 왜 편지 없어?”라고 물어보기도 했으니 생각보다 꽤 자주 줬나 보다. 모든 게 처음이었다. 뜨거운 여름 부산 바다를 보러 갔던 날, 장미 축제가 열린다 해서 갔던 일, 내일로 티켓을 끊고 전국 기차여행, 강원 탑랜드에서의 번지점프까지.

싸우고 삐져서 “군대나 가버려라”라고 말했었는데, 정말 내가 군입대 지원을 하고 난 후 발표가 나던 날,
“그때는 장난으로 말했는데 현실로 만들어버리면 어떡해” 하면서 울던 그애가 생각이 난다.
입대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불안함은 더 커져 갔고, 미래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 부분은 늘 문제였다.
“나는 다른 사람처럼, 입대한다고 헤어지자는 말은 못 하겠다. 그냥 기다려줘. 나는 너랑 결혼할래.”
철없이 나왔던 그 말들은 모두 사실이었는데, 너무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현실에서 나와 함께 있던 그 애가 옆에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가까운 지역으로 빠져 자주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지만 현실은 달랐다.
점점 변해가던 그애, 떨어진 거리와 지금처럼 휴대폰을 반입할 수 없던 그때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꽤 큰 일이었나 보다.
우리가 함께 쌓은 추억은 현실을 이겨낼 힘이 없었다.
1년이 지나, 일병 위로휴가를 받아 나오던 날 이별 통보를 받았다.
“사랑을 구걸하지 마.”
차갑게 나에게 던진 말. 지난 추억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을까? 같이 보냈었던 모든 시간들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어머니처럼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존재가 늘어나는 것이 더 두려워졌다.
‘돌아보면 좋은 추억이다’라는 말은 ‘그래봤자 기억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과 똑같게 느껴졌다.
머릿속의 감정들은 현실에선 아무런 힘이 없다. 불현듯 꺼내지는 좋았던 기억들은 현재의 내가 많이 달라졌고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만 상기시킬 뿐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감정에 예민해졌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쉽게 흔들리고, 누군가를 잃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조여왔다.

그리고 지금, 내 옆에 한 사람이 머무르고 있다.
뭐든 혼자 척척 잘 해내고,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다 말하며 관계를 억압처럼 느끼는 사람.
내가 강제적으로 누군가를 잃은 철창 속에 갇혀 있다 나온 사람이라면, 이 사람은 뭔가 얼음 속에 스스로를 가둬 놓고 냉기로 다가올 수 없게 만드는 사람.
많은 상처가 그 사람을 얼려 놓았을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은 첫사랑 때와는 다르다.
언제 녹을지 모르지만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다. 차가운 냉기를 피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맞아서 녹여내고 싶다.

**내가 알게 된 한 가지는, 무엇 때문에 마음이 얼어 있다면 녹일 수 있는 힘은 옆자리에서 나온다 생각한다.

내 낭만은 힘들 때 기쁨으로 피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받아내서 그 옆을 굳건히 지켜내는 것이니까. 허락을 해 준다면 옆에 있고 싶다.**

이 사람 또한 기억 저편으로 흘러가지 않았으면 한다.
같은 시간에서 좋은 일들과 그렇지 못한 일들이 함께 올 테지만, 힘들고 슬프고 괴롭더라도 서로의 옆에 있었으면 한다.
나의 낭만이 이 사람에게 전해지면 좋겠다. 이상적인 낭만이라 말할 수 없지만, 같이 있는 시간 속에서 뒤돌아서 아름답게 느꼈던 시간들을 같이 꺼내보고 싶다.

현실이라는 낭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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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안녕하세요. 우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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