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바라보기
낭만 바라보기
2025.12.01
온기·⌛14분

여름의 끝자락, 제주도로 떠났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느긋한 나홀로 여행이었다. 그곳에서 요가와 명상, 다도와 만났다. 이 셋은 꼭 함께 붙어 다니는 짝꿍이라 했다. 낮밤으로 명상과 요가 수업을 듣고, 개인 차실에서 다도를 하며 나는 조금씩 이 삼위일체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가장 좋아했던 건 오후 5시 명상이었다.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바깥 정경이 보이는 웅장한 수련장의 장엄한 분위기를 가장 깊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눈을 감고, 선생님이 들려주는 싱잉볼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묵직하고 잔잔한 중저음이 듣기 편안했다. 역설적이게도 '고요함'이 소리가 된다면 이렇겠거니 싶었다. 

명상을 할 때는 싱잉볼의 소리와 진동에 집중한다. 넓게 퍼졌다가 가늘어지고, 희미하게 흩어지는 흐름을 따라가며 잡념을 내려놓는다. 그러나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는 어렵다. '다리가 간지럽네' 따위의 현실적인 생각, 혹은 '내일 아침은 뭘 먹지' 같은 수련자가 아닌 여행자의 생각은 의지와 상관없이 불쑥 떠오른다.

선생님은 그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잡념이 생기면 그 즉시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는 구나' 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을 알아차리면 된다. 그리고 다시 소리로 돌아오면 된다.

생각을 하는 동시에,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는 경험이 기묘했다. 고요한 마음의 수면 위로 잡념들이 불순물처럼 떠올랐다. 의외로 그리 방해꾼 같은 존재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면을 비추어 주었다. 발견한 것들은 완전히 낯선 것이 아니다. 이미 내 안에 자리 잡은 줄로 알고 있던 것들을 다시 발견할 뿐이다. 명상의 세계에서는 그 당연한 것들을 아주 새삼스러운 시각으로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다.

붉은 노을이 깔렸던 창밖은 어느새 어두워졌다. 싱잉볼 소리도 거두어졌다. 빛 한 점 없는 실내에 고요하고 기분 좋은 정적만 남았다. 그 순간이 유난히 좋았다.

마지막에 선생님이 말했다. 더 중요한 건,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좋은 소리만 들을 수 없어요. 나쁜 소리라고 말하는 소음들도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소리에 좋고 나쁨이 있는 건 아닙니다.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은 마음이 하는 일입니다. 모든 소리로 명상을 할 수 있습니다. 빗소리든, 바람 소리든, 생활에서 나는 어떤 소리로도요.

그날 나는 평온하고 기분 좋은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7시 명상으로 그 기운을 이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몸이 노곤해서 좀처럼 일어나기 쉽지 않았다. 서둘러 명상실로 향했으나, 눈앞에는 굳게 닫힌 문만 보였다. 딱 1분 늦었다. 안에서는 이미 명상 음악이 흐르는 중이었다. 잠이나 더 잘걸 그랬나. 오전 8시 요가 수업까지 1시간이 붕 뜬다. 게다가 정신없이 나오느라 객실 카드 키를 방에 두고 몸만 나왔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카운터는 열리지도 않았다. 연달아 얼빠진 짓을 하다니. 명상에 너무 심취한 걸까. 정신 차려야지, 지금 날 챙길 사람이 나밖에 없는데!

나는 그냥 밖으로 나가서 걸었다. 라운지에 앉아 있기보다는 바깥공기를 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해는 밝았지만 아직 어둑했고, 바람은 제법 서늘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바다가 잘 보이는 나무 둥치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용한 가운데 파도 소리만 들렸다. 어떤 소리로든 명상을 할 수 있다고 했었지. 나 홀로 아침 명상을 시작했다. 파도 소리가 제법 운치 있다. 바람이 불어서 약간 쌀쌀하네. 파도 소리에 집중. 겉옷을 아예 챙겨 나오길 잘했다. 파도 소리. 조식 메뉴는 뭘 고를까. 파도 소리. 지금 몇 시지?

말이 명상이지 그냥 가만히 앉아 '파도멍'에 가까웠다. 그래도 선생님은 이것도 명상이라 관대하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도 간간이 조깅을 하는 사람, 화물을 실은 트럭 운전자들이었다. 이른 아침에 각자의 목적지로 달리고 있었다. 오갈 데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본의 아니게 시간이 넘쳐나서 제주도 앞바다를 집 앞 풍경 보듯 하는 호사를 누렸다. 너무 예뻐서 아쉬운 광경이었다. 혼자가 아니었으면 인증샷 찍어달라고 했을 텐데(?)

한 달 동안 유럽에 가있던 친구가 말했다. 처음 일주일은 너무 재미있었고, 이주째는 거기가 거기 같았고, 삼 주째부터는 그냥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다고 했다. 한식이 미치게 먹고 싶었단다. 현지에서 유명한 요리를 먹어봐도 처음 한 입이 제일 맛있다, 맛집은 한국이 최고다, 양식조차도 한국식으로 개량된 'K-양식'이 최고다. 익숙한 게 제일이야. 한국이 참 살기가 좋아.

숙소 밖으로 나간 시간 아침 7시. 상쾌한 걸음으로 산책하기 5분. 바다 풍경에 감탄하며 사진 찍기 5분. 파도 소리 들으며 명상하기 5분. 그 이후는 어땠더라?

지독하게 혼자라는 생각. 그리고 빨리 실내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

*

짤막한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곳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엽서와 비누도 챙겼다. 그것만으론 아쉬워서 요즘 시간이 나면 유튜브를 보거나 요가원에 가서 수련을 한다. 명상음악도 듣고 차도 마신다. 좋았던 순간을 일상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나름 각오가 필요하다. 시간표 사이에 어떻게든 끼워 넣고 정해진 시간 내로 빠듯하게 수행해야 하는 일과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멋진 풍경에도 금세 익숙해지는 인간의 적응력을 생각하면 말 다 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아득한 자동차 소음이 귀에 들린다. 꽉 닫힌 창문 바깥의 멀찍한 거리에서 들리는 먹먹한 소리는 군중의 박수소리 같기도, 유속이 높은 물소리 같기도 했다. 좀 더 흐릿한 필터를 씌우면 끝없이 이어지는 파도 소리 같기도.

명상 선생님이 말했듯이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불협화음의 기준도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중세 시대에는 고음이 공포심과 불안감을 조성하며 악마의 존재를 연상시키는 불편한 소리였다고 한다. 고조되는 감정을 고음으로 폭발시키는 요즘 노래를 생각하면 참 신기한 일이다. 

익숙함과 낯섦을 가르는 경계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불과 몇 달 전 그렇게 가까이 눈에 담던 것들이 어느새 낯설어졌고, 새롭던 것들이 더 이상 특별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좋은 순간은 짧게 지나가는 게 당연하니, 나이가 들수록 낭만을 잃는다는 말을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건 섣부르다.

오래 우려낸 차는 첫 한 모금에 가장 강한 향이 느껴진다. 향은 곧 잔 전체에 고루 퍼져 은은한 풍미로 남는다. 낭만도 그렇다. 첫 한 모금의 짙은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익숙함의 시간에 희석되어서 색채가 흐릿해졌을 뿐이다. 찻잎도 세 번은 우려서 서서히 옅어지는 맛을 봤다. 낭만도 그러지 못할게 뭐 있을까.

마음을 고요히 잠재우고, 내 속에 당연한 것처럼 떠있는 것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자. 너무 투명해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면, 한 모금 마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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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
안녕하세요. 온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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