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양 주위를 끊임없이 돌고 돈다. 궤도를 벗어나면 죽을지도 모른다.
정해진 운명, 벗어날 수 없는 울타리, 반복되는 삶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어떤 틀, 정해진 궤도가 있는 삶을 지독하게 싫어하는 사람이다.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라하면 진심 죽을지도 모른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그 상자 안에 갇힌 기분에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인가 하루도 빠짐없이 고뇌하던 때가 있었다. 궤도를 벗어나고 싶었다. 꼭 더 넓은 세상이 있을 것만 같았다. 혹시 없다 하더라도 상자 밖으로 나와 확인하고 싶었다. 세상의 시선, 환경, 책임, 가족들로부터. 나를 끊임없이 옥죄고 가두는 많은 것들로부터 떠나고 싶었다. 내가 숨 쉴 수 있는 곳을 찾아가겠다는 마음이 그렇게 이기적인건지. 내가 가진 것들에 도대체 왜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 나를 채워, 나에게 채워진 것들로 사람들에게 나누며 살겠다는 다짐이 그렇게나 잘못된건지. 내 컵은 채워주지도 않고, 다른 컵에 물을 부어주라는 격인 어떤 사람들의 방식이 도무지 이해가 안됐다. 설득하고 싶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잘못된 게 아니라고. 이런 삶도 괜찮다고. 이런 방법도 있다고.
직장과 가족들 사이에서 긴 시간을 부딪혀가며, 부딪혀도 한 걸음 씩 발을 뻗었다. 부단히 애를 쓰고 있는데도 왜 너는 한 걸음도 떼지 않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붙잡아왔던 마음이 허물어지던 때도 있었고, 아무도 몰라주는 마음을 난 왜 그리 붙들고 있는지 화가 나고 눈물이 나던 날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주저앉을 수가 없어 그저 걸으며 나만의 속도로, 내 걸음으로 증명해보이겠다는 다짐에 다짐을 더했다. 그렇게 아등바등하다보니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궤도 위를 꽤나 안정적인 속도로 돌게 되던 때도 있었다. 가끔은 해가 보이고, 가끔은 칠흙 같았지만 대부분 어스름한 날들이었다. 이 궤도를 돌다 보면 다시 해가 보일 거라는 것을 알게 된 정도. 어느 구간에서 불꽃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또 어느 구간을 지나면 식기도 했다. 엄청 화가 날 때도 있고, 모두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때도 있었다. 그런 감정의 궤도를 안정적으로 돌게 되었다. 어떤 날, 칠흙 같은 어둠의 구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항상 똑같이 뜨고 지는 태양처럼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인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내내 빛이길 바랐다. 강렬한 빛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들끓는 때가 있다. 다시 찾아올 어둠을 너무 춥게 보내지 않을 수 있게 몸을 데워두고 싶다는 그런 핑계로. 매일 단련하면 자리 잡는 근육처럼 그간 궤도를 돌며 나는 분노와 사랑의 힘으로 눈 앞에 보이는 현실들을 잠깐 외면할 수 있는 근육이 생겼다. 내가 숨 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고 싶다. 잠시 궤도를 벗어났다.
떠나는 날의 비행기 표, 3일 정도 지낼 숙소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조지아로 떠났다. 그 곳을 떠올린 이유는 언젠가 제주에서 책을 본 적이 있었다. 초록색의 끝없이 펼쳐진 들판 안에 자유로이 보이는 사람들. 그 사진 아래에 ‘스위스 사람들이 산을 보러 가고, 프랑스 사람들이 와인을 마시러 가고, 이탈리아 사람이 음식을 먹으러 가고, 스페인 사람이 춤을 보러 가는 곳’ 이라는 문구만 기억이 난다. 그 문장에 언젠가 꼭 이곳에 가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마음에 담아둔 그 날 본 한 장의 사진을 따라 왔다.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택시와 버스를 갈아타고 그렇게 닿았다. 그토록 바랬던 궤도를 벗어난 자유는, 어둠 속에서 매일 그렸던 그 꿈은 그렇게 이틀을 꼬박 지나 이 곳에 닿게 된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느낄 만큼 간절했던 것이었다. 눈물이 났다. 그렇게 나는 몇 달 드넓은 세상을 여행했다. 맑은 숨이 쉬어지면서 원하고 그리던 것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시선이 바뀌었다. 어느 누구에게 증명할 필요도 설득할 필요도 없어졌다. 너무나 충분해서. 그냥 다 감사했다. 그런 마음이 들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태양을 중심으로 각자의 궤도를 도는 행성들. 목성은 거대하고 무시무시하지만 지구를 보호하는 행성이다. 소행성과 혜성의 80% 이상을 자신의 중력으로 끌어가거나 튕겨낸다. 우리에게 오지 않도록. 태양계에서 가장 빠르게 돌면서 태양계 전체 구조를 안정시키기도 한다. 우리와 비슷한 화성은 목성처럼 큰 영향을 주진 않지만 친구처럼 우리 곁에서 리듬을 맞춰준다. 소행성대의 일부 입자들은 지구까지 닿기 전 화성과 먼저 만난다. 일부는 화성이 몸으로 막아준다. 그렇게 소행성의 궤도가 바뀌어 우리와 만나지 않는다. 지구는 목성의 중력 간섭으로 수 만에서 수십만 년을 주기로 궤도가 조금씩 변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생명이 계속 숨 쉴 수 있는 건 지구의 온도, 대기, 바다, 식물과 미생물 같은 다양한 생물들이 서로 얽혀 균형을 맞추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궤도를 벗어나 자유롭다 생각했던 것이 어쩌면 그들 덕분일 거라는 생각이 스쳤다. 고된 여행을 하며 만난 경이로운 자연의 풍경, 땀을 뻘뻘 흘리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있는 가게 주인, 같은 표정으로 매일 같은 길을 오갈 버스 운전사, 밤낮없이 맞아주는 숙소 스탭들, 대가없이 친절을 건네는 사람들. 오늘도 묵묵히 어둠 구간일지 모를 그 궤도 위를 돌고 있을 나의 가족들. 미운 마음 없이 언제나 응원을 건네주는 내 사람들.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아서. 아무에게나 오는 순간이 아님을 알아서. 이 충분한 마음은 내 부족한 언어로는 내 사람들에게 죽을 때까지 설명하긴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어둡고 답답하게 느껴졌던 그 궤도로 돌아가는 것이 나를 위한 길이자 옳은 길이지도 모르겠다는 어렴풋한 확신이 들었다. 떠날 때, 돌아오고 싶지 않을 것 같던 그 마음은 사라지고 나는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다시 궤도로 돌아왔을 때, 난 신기하리만치 편안히 숨 쉬고 있었고, 해가 보이지 않을 때도 그리 어둡지 않았고 춥지도 않았다. 나는 어둠에서 무언가를 볼 수 있는 눈이 생겼고, 묵묵하게 궤도를 돌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건네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여행은 어쩌면 돌아오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여행처럼 살 순 있어도 여행으로 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떠나겠다보다 어떤 마음으로 돌아와야 하는지를 아는 게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궤도는 생명의 전제 조건이다. 지구가 궤도를 따라 돌며 공전하는 덕분에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궤도를 따라 돌지 않으면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을 잊을지도 모른다. 태양의 온도, 지구의 거리, 대기의 흐름, 물의 순환 그 모든 것이 적당할 때 우리는 숨 쉴 수 있다. 지구가 돈다는 건 계절이 반복된다는 뜻이다. 지구가 그 자리에 돌아온다는 것은 계절이 돌아온다는 뜻이다. 반복된다는 것은 어쩌면 지루함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시간 안에서 우리의 자리 안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방식을 찾으면 된다. 각자의 궤도에서 계절의 시작은 우리가 정하기 나름이고 꼭 사계절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올해와 내년이 매번 같을 필요도 없다. 궤도를 돈다는 것을 내 자리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라 생각해보면 어떨까. 나는 ‘그 자리’는 ‘언제나 내 마음이 가장 편안한 자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제일 괜찮을 수 있는 자리.
어떤 궤도 위에 있든 부디, 마음을 편히 뉘일 수 있는 집을 찾아 돌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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