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영화관에서 SF영화 속 우주를 바라보면 거대한 침묵에 잠시 귀가 먹먹해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소리가 지워진 절대적인 공간, 끝없는 어둠 위로 행성들은 부유하고, 별들은 아주 오래된 빛을 남긴 채 사라져간다. 광활한 우주에 유일무이한 존재. 특별한 행성. 찬란하게 빛나는 푸른 점. 오직 하나.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우리의 집. 무한한 우주 속 우리들만의 작은 실험실. 이 넓은 우주에 유일하게 생명의 소리로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행성. 바로 지구다.
나는 외계 생명체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생명체가 우주에 우리 뿐일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 다만 찰나를 살다 갈 뿐인 인간 중 하나인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외계 생명체를 만날 수는 없을 듯 싶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혹시, 만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아니, 도대체 지구에는 어떻게 생명이 탄생했을까.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졌지?‘ 로 이어지게 된다.
원시 지구. 뜨겁고, 폭력적이고, 숨 쉴 수 없는 가스가 가득한 혼돈의 세계였던 지구는 이 극단적인 환경의 변화 덕분에 생명의 재료를 얻어 어쩌다 바다에서 태초의 생명을 만들어냈다. 약 4억 년 전, 그렇게 나타난 해양 생물들이 대멸종했다. 그리고 태초의 식물들이 태어났다. 육상 생물, 육지와 물을 오가는 생물들이 살아 숨쉬던 때를 지나 약 2억 5천만 년 전에 지구 역사상 가장 큰 대멸종이 일어난다. 생물 종이라 할 수 있는 90퍼센트가 멸종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지금으로 따지면 거미류 같은 10퍼센트의 절지동물들만 남고 지구에 모든 생물이 멸종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과학계에서 일반적으로 받아 들여지는 종 구성 비율 중 절지동물의 비율이 10퍼센트 정도 된다고 함.) 그런 척박한 상황에서 파충류의 출현으로, 넓은 의미에서의 파충류가 진화한 공룡이 탄생했다. 1억 년이 넘는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지구에서 살아남았던 공룡도 굉음과 함께 멸종하고, 아주 오랜 침묵과 충돌,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다 30만 년 전, 인류가 탄생했다. 가늠도 실감도 되지 않는 그런 숫자들을 넘어서, 만난적도 없는 수많은 탄생과 죽음 뒤에, 들을 수도 없는 침묵과 아우성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다.
특별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었던 실험정신 충만한 과학자의 화학 실험처럼, 어쩌면 이 모든 것을 설계한 신의 계시처럼, 이거랑 저거랑 섞어볼까 하다가 뭐 어찌저찌 다양한 환경과 더해져 우연히 펑! 새로운 발명을 하듯 그렇게 우리가 태어났다. 그러니까 스포이드로 톡 떨어뜨린 물 몇 방울을 얼렸다가 녹였다가, 빛도 한 줌 쬐어주고, 불도 냈다가, 돌멩이+먼지 몇 덩어리 던져 넣어주고, 폭풍도 수차례 일으키다 보니 모든 것들이 연쇄작용을 일으켜 인간이 만들어졌다는 말로 축약할 수 있다. 이런 실험의 과정이 수 십억 년 동안 순서도 없이, 셀 수도 없이 반복된 끝에 생명이 탄생했다.
지구가 존재의 균형을 찾아낸 순간. 그 균형 위에서 생명들은 저마다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바람이 숲을 스쳐 지나가는 소리, 파도가 모래를 끌어안았다 놓는 소리,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빗소리, 작은 새의 지저귐, 여름밤 풀벌레들의 아름다운 노래, 인간의 웃음과 울음까지. 지구의 들숨과 날숨으로 만들어내는 소리. 지구에서 들리는 소리가 특별한 이유는 침묵과 고독이 함께이기 때문이다. 온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명의 소리를 품은 지구. 시골 밤하늘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온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듯 고요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오직 바람 소리와 내 심장의 박동만이 들려올 때. 숲의 깊은 그늘이나 바다의 싸늘한 새벽에도 적막과 고요가 흐른다. 익숙한 도시의 소음을 벗어나, 지구의 숨결과 같은 속도로 호흡하는 순간이다. 침묵 속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보면 멀리서 파도가 무너지는 리듬, 까마득히 먼 데서 눈이 쌓이는 소리, 살아있는 것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이야기, 깊은 내면에 품고 있는 낮고 잔잔한 떨림 같은 것들이 가까이서 들려온다. 지구는 무수히 많은 죽음과 탄생을 지나며, 침묵과 소리가 함께인 세계에서 살아 왔을테다. 어쩌면 침묵은 생명의 소리를 허락하는 공간일지 모른다. 생명으로 가득 찬 지구의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올 때면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아직은, 우리가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명의 소리로 하모니를 만들고 있다고.
우리는 지구의 침묵 속에서 태어났고, 그 침묵을 해치고 나오는 소리를 만들며 살아간다. 우주는 여전히 침묵하지만, 지구는 우리 덕분에 오늘도 계속해서 울린다. 그 안에 숨 쉬는 우리도 침묵 속에서 깊어지고, 그 침묵과 함께 들려오는 숨결과 웃음, 울음으로 조금씩 나만의 하모니를 만들어간다. 우주에는 닿지도 않겠지만, 찬란하게 넓은 세상에 아주 희미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지독하게도 침묵하는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소리치게 되겠지만, 지금, 지구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이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 잊지 말자. 깜깜한 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내 심장 소리가 온 세상에서 가장 크게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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