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롭다. 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를 좋아한다. 일상 생활 속에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오늘은 정말 경이로운 하루야! 그거 정말 경이로운 생각인걸!?” 이라고 흔히 말하게 되진 않으니까.
생명의 탄생. 추운 겨울을 지나고 또다시 잎을 틔워내는 나무, 피어나는 꽃. 감탄이 나올 정도로 놀라운 천재들의 정교함, 고뇌하는 예술가의 아름답고 거침없는 표현력. 한없는 사랑. 앞에선 조용히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압도하는 대자연 앞에서 이 단어를 가장 막힘없이 가장 큰 소리로 떠올리게 된다.
2015년. 21살 쯤, 교내 전공 관련 직종 해외 탐방 및 견학 프로그램 신청 공고를 보았다. 캐나다는 우리 전공에서 꽤 의미있는 나라였다.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을 것 같아 너무나 신청해보고 싶었다. 조건이 있었다. 4명 이상으로 팀을 구성해야 할 것. 이미 조가 완성된 1팀이 지원하여 심사 중이었고, 나는 서둘러 친구들을 모으려고 애썼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에다 비자 발급이 필요했고,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비용 외에 용돈이 필요한 여정이었다. 함께 하고 싶었던 친구들은 돈, 가족들의 반대, 근로 장학 등 갖가지 이유들로 함께하기 어렵다는 뜻을 비쳤다. 끝내 친구들을 설득 하지 못해 결국 그 프로그램은 신청조차 해볼 수가 없었다. 그 즈음 나는 전공에 열정이 들끓을 때였다. 무조건 가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이 간다하면 가볼까 하던 마음 맞는 친구 한 명을 설득해 계획을 짰다. 토론토에서 퀘백까지 이동 동선을 짜고, 구글 맵을 켜 토론토부터 우리 전공 관련 직장을 모두 찾아봤다. 홈페이지, 연락처 같은 것들을 찾고 찾아 우리가 어떤 것들을 배우고자 하는지, 전공 수업을 통해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포트폴리오 자료를 만들어 되지도 않는 영어로 구구절절한 글을 써서 40군데가 넘는 곳에 메일을 모두 돌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21살 어린 나이에 뭐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 무작정 직장 탐방을 하고 싶고, 가능하다면 하루 이틀 일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터무늬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모두 우리의 메일을 읽어는 보았다는 표시가 있었고, 놀랍게도 딱 하나의 답신을 받았다. 너희들의 열정은 좋게 평가하지만, 보안 문제로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계획을 짜며 이미 캐나다에 가 있었다. 동선, 도시, 숙박까지 모두 생각한 이후였기에 안되더라도 일단 가자! 가서 또 부딪혀보자! 하며 그렇게 비행기표를 예매해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떠났다. 맵에서 찾았던 그 장소를 지나면 괜히 기웃기웃 거리기도 하고,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동선을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다. 네 명만 모았으면, 저기 안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건데. 며칠은 일해볼 수 있는 건데. 그런 생각들을 하며.
안되는 건 어쩔 수 없으니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그냥 즐기자! 하며 여행 코스들을 하나 하나 밟으며 돌아다녔다. 나는 이 곳 캐나다 토론토와 불과 1.5시간 떨어진 곳에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한다. 전공과 아무 관련 없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오후 내내 보고 있을 수 있는 날이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이건 해야지 하며 보상심리로 폭포 투어코스도 예약했다. 직장 탐방 그 하나만 생각하면서 밤새 생각하고, 준비했었던 여정에 분명 즐거웠지만 기대와 다른 결과에 꽤나 지치고 서운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시차에 헤롱거리다 버스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 정류장에 내렸다. 평화로운 하늘 아래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던 나이아가라와 가까워지며 ‘와, 미쳤다. 현실인가. 말이 돼?’ 싶은 장면이 눈 앞을 가득 채웠다. 점만한 사람들은 내 눈에 보이지도 않았고 그 장관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경이롭다. 딱 그 표현이 가장 정확할 것 같다. 정말 경이로운 대자연이었다. 어딘가에 홀린 듯 하루 종일이라도 보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주 기특한 보상심리 덕분에 나는 폭포를 바라볼 뿐만 아니라 그 아래로 배를 타고 유영할 수 있었다. 쨍한 태양 아래서 자비없는 폭포가 만들어내는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무서웠다. 이 대자연이 만들어낸 거대한 폭포와 그 대자연의 폭포가 만들어내는 비바람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난간을 꼭 잡고, ‘죽는거 아니야?’ 두려워지다가, ‘이러다 죽는다면 그것 또한 운명이지’ 싶다가, ‘이렇게 멋진 곳에서 죽는다면 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황홀한 경험이었다. 맞으면 100퍼센트의 확률로 죽을 것 같은 천둥소리를 내는 그 폭포가 만들어내는 물방울들은 눈부시게 반짝였고, 퐁퐁 튀어 올라 쫄딱 젖을 만큼의 짜릿함을 만들어주었다. 배가 휘청일 정도의 파도가 지나간 자리엔 태양빛이 내리쬐었고, 그 사이로 너무도 선명한 무지개가 몇 겹 씩 빛을 냈다. 내가. 우리가. 인간이. 참으로 보잘 것 없어지는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처음 느꼈다. 내 걱정도, 마음도, 고민도, 내일도 이 앞에선 아무렇지 않아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바라던 목적을 이루지는 못한 여정이었지만, 21살 그 어린 나이에 감히 할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시발점이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자연을 찾았다. 이 말, 저 말, 내 마음 같지 않은 말들 속에서 내 마음 같은 말을 만들어내려고 혼자 열심히 싸우던 나는 침묵으로 이야기하는 자연의 소리들이 좋았다. 그들만의 언어로 묵묵히 보여내는 풍경들이 좋았다. 곧 잡아먹힐 듯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져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아도 태양은 그 자리에 있고, 파도가 지나가고 요동이던 것들이 잠잠해질 때 쯤, 무지개가 뜬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꼈으니. 이 자연 안에서 태어난 나의 삶도 그러할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었다. 어쩌면 삶에서도 큰 폭풍우가 밀려올 땐, 그냥 두 발을 땅에 딛고 서 있기만 하면, 그러기만 하면 지나고 무지개가 뜨는 것이 자연의 순리인 것이라고 그렇게 믿었다.
친구랑 카페에 앉아 노트북을 켜 밤새 번역하고, 계획안을 짜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그렇게 눈이 아프도록 목이 아프도록 떠들었던 그 시간들, 기다리던 답장이 와서 ‘미쳤다.’ 하며 눈을 맞추던 순간도 내가 이 직업을 선택 한 뒤, 때로 폭풍같은 마음들이 몰아쳐 올 때, 버틸 수 있게 해준 빛이었을지 모른다. 오늘의 이 버텨냄도 결국 그 뒤의 무지개를 보기 위함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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