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칵. 낭만의 스위치를 끈다. 낭만을 찾으려던 시도들도 함께 꺼진다. 땅땅땅. 일단, 낭만에게 무기한 집행유예를 내린다. 죄목은 사람을 현혹시킨 것. 어느 정도 단서는 모았으니, 일단 구속해서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아냐고. 책상을 탕!치면서 한마디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망할. 구속도 하기 전에 도망가고 없다.
"누구인가? 누구 낭만 소리를 내었는가?"
궁예의 관심법을 이용해서 낭만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싸그리 잡아들여야겠다. 잡아서 모두 독방에 집어넣은 다음에 한 명씩 물어야겠다. 낭만하고 무슨 관계냐고. 당신은 낭만을 어떻게 알게 됐느냐고. 낭만이 하는 일에 동참했느냐고. 그와 모종의 관계에 있진 않냐고. 아니라면, 어떤 말로 당신을 꼬드겼느냐고.
낭만 그 놈이 어디에 숨었는지 샅샅이 뒤져서 찾아야만 해. 어디서 또 사기를 치고 있을지 모른다, 그 자식. 또 어딘가에서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자신을 믿어야 한다고 속삭이겠지. 낭만을 가지고 살면 인생역전을 할 수 있다고 했을 거다. 그리고 간도 내주고 쓸개도 내주고 나면 자취를 감출 거다, 아마도. 그 놈한테 당한 사람들은 낭만을 잃어버렸다고 절망하겠지. 이게 그 놈의 수법이다. 잃어버린 적이 없는데도 잃어버렸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서 폐인이 되게 만드는 것.
어쩌면 거대한 무대 위에서 강연을 하면서, 효과도 없는 낭만을 팔고 있을지도 모른다. 낭만 한번 드셔보세요. 안 사도 됩니다. 맛만 보세요. 먹을 만 하죠? 먹을 만한 게 아니라 맛있죠? 맛만 있는 게 아니라 몸에도 좋답니다. 사람들이 이걸 괜히 만병통치약이라고 부르는 게 아닙니다. 이것만 드시면 100세까지 행복합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드시고 계세요. 성분도 완벽해요.
이렇게 모든 걸 치유할 수 있다고 약을 팔겠지. 그런데 그런 게 세상에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계속 피해자가 나온다. 호주머니 끝까지 탈탈 털리고 나서야 '이게 낭만이 아니었구나' 한다.
눈속임의 낭만과 현실의 낭만은 다르다. 이렇게 말하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하겠지. 낭만은 다 똑같이 소중한 거라고 말하겠지. 여러분, 낭만의 포장지를 벗겨야 합니다. 시도해 보세요. 포장을 벗기면 조각난 낭만이 있을 겁니다. 조각조각을 하나로 맞춰 보세요. 몇 개가 모자랄 겁니다. 우리는 그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해요. 그래야 현실의 낭만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백날 말해봤자 뭐하냐. 다들 흔들림 없는 편안함만 찾는데. 흔들리는 게 정상입니다. 원래 몇 개 모자란 겁니다. 오색찬란한 그거, 진짜 낭만이 아닙니다. 하면 날 사기꾼 취급하겠지.
그래도 어쩌겠어. 낭만의 피해자를 한 사람이라도 줄이려면 계속 말하고 다니는 수밖에.
나는 흑백논리를 좋아한다. 게다가 과정보다 결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일이 나에게 무엇이었는지, 이 관계가 어디까지 이어질 것인지, 이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
결론을 얻지 못하면 불안하고, 불안은 곧 실패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지금껏 수없이 많은 결론을 임시로 만들어 붙였다. 아직 끝나지 않은 장면에 마침표를 찍고, 흐르고 있는 감정에 제목을 붙였다. 그렇게 하면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심은 늘 잠깐이었다. 결론은 나를 오래 붙들어 주지 못했다. 하나의 결론이 생기면, 곧 다른 결론이 필요해졌다. 더 정확한 설명, 더 나은 정의, 더 설득력 있는 이유. 나는 마치 끝을 수집하듯 살아왔다. 완벽한 결론이 많아질수록 삶이 단단해질 거라 믿었기 때문에.
눈속임의 낭만과 현실의 낭만. 가짜와 진짜. 진짜 눈물과 거짓 눈물을 구분하는 것처럼, 낭만을 참과 거짓으로 깔끔하게 구분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결론은 뭐야?"
사실 모르겠다. 아는 거라곤,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려는 시도들이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는 사실뿐이다. 결론만을 위한 질문은 나를 이 자리에도, 저 자리에도 편히 머무르지 못하게 했다.
결론을 내리지 않는 데는 생각보다도 훨씬 더 넓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말을 견뎌야 하고, 설명하지 못한 상태를 감당해야 하며, 누군가에게 "그래서?"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도 모른다"는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질문에 고개 숙이는 건 쉽지 않았다. 눈속임의 낭만과 현실의 낭만을 깔끔하게 구분하지 못한다는 게 막막하게 느껴졌다. 완벽한 결론이 없다는 사실은 마치 실험에 실패한 자의 상실감과도 같았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이제 삶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사람으로 성장했다"라든가 "이렇게 낭만을 찾았다"는 말로 스스로를 고정시키지 않으려 한다. 그 문장 자체가 나를 박제해버리기 때문이다.
아직 움직이고 있는 사람에게, 아직 흔들리는 감정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게는 결론보다 여백이 필요하다는 걸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글 역시 결론 없이 끝내고 싶다. 미완의 상태가 불안하긴 하지만, 더는 나를 조급하게 몰아붙이지 않기로 한다.
'완벽한 결론은 없다.'
이 얼마나 마음 편한 결론인가. 모른다는 문장 하나만으로도 오늘의 일기는 충분할지 모른다. 오늘의 낭만이 내일의 현실로 흘러가면, 또 다른 낭만이 그 위에 덧입혀질 것이다. 낭만의 이중 구조. 현실은 낭만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낭만이 다시 피어날 자리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오늘 밤은 머리를 비운 채 조용히 잠들기로 한다. 결론은 내일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미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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