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좋은 이유
비가 좋은 이유
2025.12.24
은·⌛9분

폭우가 쏟아진다. 난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을 너무너무너무 좋아한다. 보슬보슬 촉촉히 내리는 봄비도, 찐득하게 내리는 습한 여름비도, 쓸쓸함을 더해주는 가을비도, 눈인지 비인지 안개 속을 헤매이는 듯 흐릿한 풍경을 만드는 겨울비도.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비는 하늘이 뚫릴 듯, 고막이 찢어질 듯 세차게 퍼붓는 오늘과 같은 비. 여름의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주고, 맞고 방방 뛰어다녀도 감기 걸릴 걱정이 1도 없는! ! !

출근하기 싫은 매일 아침, 유일하게 출근길을 들뜨게 만드는 것은 '비' 였다. 길을 걸으며 우산 속에서 들리는 소리도, 차 안에서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도 참 좋다. 빗방울이 토독토독 떨어지다 쏴아아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다. 오늘도 비가 쏟아지는 날씨가 너어무 좋아 웅덩이란 웅덩이는 다 밟으면서 신나게 집으로 옴^o^

사회적 체면이 있으니 이 도심에서 비를 맞고 뛰어다니기는 어렵고, 한적한 시골이나 다들 비를 맞고 다니는 건 신경도 안 쓰는 외국에서 이런 날씨였다면, 난 단연 우산 없이 돌아다녔을 것이다. 와, 진짜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 ! !

비 오는 날, 글쓰기? 너무 잘 어울림. 비 오는 날, 음악 감상? 너무 감성 있음. 비 오는 날은 심지어 셀카도 더 예쁘게 나올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을 부린다. 비 오기 전 그 흙내음도, 오고 난 뒤 푸른 숲내음도, 더없이 선명해지는 풍경도 참 좋다. 아, 호우피해가 없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자, 그럼 나는 비가 왜 좋을까.

엄마는 아빠를 닮아서 그렇다고 한다. 아빠는 표현이 서툰 무뚝뚝한 60대 남성이지만, 고등학교 땐 밴드동아리에서 클라리넷을 불고, 비 오는 날 드라이브와 여행을 좋아하는 낭만을 아는 사람이다. 아빠한테 비가 왜 좋아? 라고 물어본 적이 있지만 아빠는 침묵으로 답했다. 아빠의 뒷면을 짐작해보자면,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의 답답함과 무게를 모두 씻어주는 것처럼 시원하게 내리는 비에 마음을 흘려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자욱이 안개를 만드는 흐린 날이 꼭 아빠 마음 같아 맑은 날보다 위로가 되어서, 빗방울을 타고 울리는 소리들이 크게 들려 머릿속에서 떠들어대는 복잡하고 불안한 생각들이 잠시 입을 다물어서, 짙게 풍겨오는 비내음에 더해진 풀내음과 흙내음 같은 것들이 시골 뒷골목에서 걱정 없이 뛰어놀던 때를 떠올리게 해서 그래서이지 않을까.

학창시절 어느 무더운 여름 밤, 비가 갑자기 내리는 날이면 아빠와 엄마는 가끔 학교 앞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그러다 아이스크림이나 어묵같은 걸 사먹을 때면 먹는다고 열심인 나에게 아빠는 말없이 우산을 기울여주었다. 어깨가 젖어가는 아빠의 모습에 괜시리 기분이 좋았다. 한 우산 안에서 팔짱을 나란히 끼고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쫑알거리는 내 이야기를 깔깔 웃으며 듣는 엄마와 툴툴거리던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집으로 걷던 때가 있었다. 또 어떤 날은 바닷가 근처 유명한 절을 가보고 싶어하는 엄마 아빠와 쉬는 날을 맞춰 떠났던 적이 있다. 하필 비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던 날이었다. 우산을 꼭 잡고 소리를 지르는 엄마 옆에서 아빠와 나는 큰소리로 웃었다. 온 사방에서 불어오는 비바람에 겉에 입은 우비는 아무 소용없이 흩날리고, 날씨 때문인지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우리 가족의 옷이고 머리고 난리가 나는 게 정말 너무 웃겼다. 아빠는 그때 안 젖으려고 우산 속으로 숨는 엄마에게 우산을 씌워주며 비 오는 날의 여행은 이렇듯 특별하다고 웃었다.

내가 비를 좋아하는게 아빠를 닮은 거라면, 비를 좋아하는 하나의 이유가 더 생긴다. 아빠를 닮아서.

먼 훗날, 난 비가 올 때마다 곁에서 괜스레 기분 좋은 표정을 짓던 아빠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아마, 꽤나 옛날. 혼자 일기를 쓸 때, 연필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빗소리가 위로가 되어서, 비가 세차게 퍼붓는 길을 걸으며 들었던 음악이 꼭 내 얘기 같아서, 비가 오던 날 서로의 모습을 담던 그 때 너의 사진 속 내가 참 예뻐서, 예기치 못한 여행 중 비에 짜증없이 함께 웃어주던 친구들이 좋아서, 비 온 뒤, 함께 산책하는 엄마의 풀내음 맡는 표정이 사랑스러워서, 비가 너무 많이 와 정전이 된 어느 날, 라디오를 켜고 누워 노래를 흥얼거리던 아빠의 목소리가 맴돌아서, 아빠가 비를 좋아하는 모든 이유를 알아서, 아빠를 닮아서.

그래서 비가 점점 더 좋아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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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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