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멜로디
바람의 멜로디
2025.12.27
은·⌛11분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다.

작년, 난 이제 바람에 맞설 준비가 되었어! 하는 마음으로 3월, 호기롭게 제주로 내려갔다. 해보고 싶은 것도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바람의 제주’ 답게 미친듯이 불어 닥치는 바람 탓에 한걸음 떼기가 힘들어 바람이 분다는 날은 집 밖을 나설 수도 없을 정도였다. 동서남북 모든 면에서 때려 붓는 바람에 눈을 뜨고 앞을 볼 수 없는 정도인데 뭔 걸음을 떼겠나. 바람 때문에 다시 육지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에 격한 공감을 느꼈다.

한낱 인간이 대자연에 맞설 수는 없었다. 봄을 기대하며 내려간 3월의 제주는 혹독하게 추웠고, 거센 바람만이 가득했다. 하루, 하루 바람에 지는 날들이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도대체 제주인들에게 바람은 뭔가요? 바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바람이 미쳤다 싶을 정도로 부는 날은 어떻게 해야 하죠? 매일 이러면 어떻게 살아요?

어떤 날에 바람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고 답하는 사람을 만났다. 와, 아니, 서있기 바쁜데 들리냐고. 보이지도 않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3대가 제주에서 살고 있다는 그 사람의 이야기가 삶에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 그 시련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나에게 무엇을 주고자 하는지 숨은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처럼 느껴졌다. 수련이 부족한 나는 추웠던 봄 내내 난 여전히 바람을 볼 줄도, 들을 줄도, 맞설 줄도 모른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고 결국 육지로 돌아왔다.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자연은 빠질 수 없는 주제였다. 가장 공을 들여 가르치는 부분이기도 했다. 드넓은 숲을 뛰어다니며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바람의 온도가 달라지며 흐르는 계절의 변화를 설레게 느끼기를 바랐다. 비가 오고 눈이 와도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었다. 개미, 공벌레 같은 작은 생명들과도 친구가 되는 법을 배울 수 있길 바랐다. 돌멩이, 나뭇가지, 부스러지는 낙엽 어느 하나 가벼이 여기지 않았으면 했다. 너무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지 않기를, 비와 바람, 눈부신 태양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알 수 있기를 바랐다.

그 덕인지 어떤 해에 맡았던 아이들은 한 해의 마무리로 우리들의 예술제를 준비할 때, 숲과 자연을 주제로 노래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계절의 흐름을 담은 예술제를 준비하며 우리들의 사계절 다큐영상을 만들고 배웠던 계절 음악들을 되짚어봤다. 아이들이 골랐던 노래는 ‘바람의 멜로디’ 라는 노래였다.

가을을 따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덕분일까. 내 비밀 날개를 찾고 있는 요즘이라서일까. 수많은 노래 중에 한 해 마무리로 불렀던 ‘바람의 멜로디’가 떠오르는 요즘이다.

함께 보낸 1년으로 영어 한 단어를 더 알고, 글자 하나를 더 쓸 줄 알기보다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랐다. 가끔 싸우기도 하고 속상할 때도 있지만, 우리가 한 교실에서 만나 울고 웃으며 함께 커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자 축복인지 알았으면 했다. 옷이 더러워지면 빨면 되고,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고, 다친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아물기 마련이니 툭툭 털어내길 바랐다. 어제의 슬픔도 오늘이 되면 희미해지고, 그렇게 어제보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한 뼘 더 자라니 맘껏 도전하기를 바랐다. 아이들과 함께 나도 매일 되새기고 또 다짐했던 것 같다.

‘난 날아올라 내 꿈을 위해, 비밀 날개를 펴고 누구보다 난 설레어’

아이들은 왜인지 ‘비밀 날개를 달고’ 라는 가사를 ‘비밀 날개를 펴고’ 로 불렀다. 난 아이들이 그렇게 부르는 게 참 좋았다. 이미 자신들에게 날개가 있다는 걸 아는 것 같아서, 그렇게 믿는 것 같아서. 나는 다 잊어버려도 이 노래는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불렀다. 내가 전하고자 했던 것은 여기 다 들어있었다. 더 커서 이 음악의 멜로디와 가사를 마음으로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 때, 자신 안의 잊고 있던 비밀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의 바람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열심히 귀를 기울여보지만 여전히 나는 바람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바람의 성난 소음 안에 어디든 닿을 수 있는 유연한 멜로디가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한다. 내 안에 비밀 날개가 있다고 믿는다. 날갯짓을 하다 보면 어느덧, 진짜 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바람을 멜로디를 타고 훨훨 날 수 있지 않을까.

바람의 멜로디

난 날아올라 내 꿈을 위해
비밀 날개를 달고 누구보다 난 설레여
가끔은 뒤로 밀려난대도
숨을 한번 꾹 참고 힘주고 걸음을 디뎌
또 어두운 밤이 온대도 난 행복한 걸
꿈을 꾸는 순간조차 날고 있으니까
아침이 오면 들리는 소리
온 세상이 숨 쉬는 소리
햇살 틈으로 울리는 소리
온 세상이 잠 깨는 소리
더욱 가까이 기대도 된다는
바람결이 노래하는 멜로디

겁내다간 놓칠 것 같아 저 많은 것들
이토록 반짝이는데 나를 부르는데
아침이 오면 들리는 소리
온 세상이 숨 쉬는 소리
햇살 틈으로 울리는 소리
온 세상이 잠 깨는 소리
더욱 가까이 기대도 된다는
바람결이 노래하는 멜로디
my world

머물러 달라 해도 또 잡아봐도
내 하루가 하루가 내게 주어지고
내 눈물은 사라져 갈 어제 속에 있잖아

난 날아올라 저 구름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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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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