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돌멩이에 굉장히 큰 의미를 부여한다. 새나 공룡이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고, 저 먼 옛날 사람들의 뼈거나 동물의 흔적이지 않을까 골똘히 바라보기도 한다. 약간 뾰족한 돌을 보면 이빨이나 발톱이 아니냐. 얇고 길쭉한 돌멩이를 보면 공룡의 꼬리인 것은 아닐까. 약간 투명한 돌을 보면 보석이라며 아주 아주 소중히 꼭 쥐고 있다 주머니 속에 넣어 무겁게 이고 지고 다니다 심지어 몰래 집에 가져가기도 한다. 놀이터 어딘가 자기네들 몸만큼 큰 돌멩이를 보면 어떤 괴물이 그대로 굳어버린 거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있지도 않은 돌괴물을 불쌍히 여기다 어느 디즈니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장면들에 가지를 쳐 동화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느 숲을 산책할 때, 걸음 걸음마다 크고 작은 돌탑이 끝도 없이 보이던 구간이 있었다. 가끔 난 돌탑을 보면 좀 무서워진다. 어느 마을 앞 커다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종이들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질 때처럼. 그 숲에선 사람들의 소원이 들리는 듯 했다. 언젠가 어릴 적 엄마아빠를 따라 어떤 절에 갔을 때, 길을 따라 졸졸 줄지어 쌓아져 있는 돌탑에 돌을 얹어보고 싶어 작은 돌을 하나 줍자 엄마는 누군가 쌓아둔 돌탑 위에 돌을 쌓지 말라고 했다. 그 사람의 소원을 덮지 말라고. 간절히 소원을 빌며 하나 하나 쌓아올렸을 마음에 감히 손을 더하지 말라했다. 아주 작은 돌탑이라도.
무언가 빌고 싶은게 있다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바닥부터 쌓으라고 그렇게 말했다. 세상의 수많은 돌멩이에는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있다.
우리집 화분에는 돌멩이들이 많다. 옛날 아주 어릴 적, 돌멩이가 가득한 바다에서 주워온 돌멩이도 여전히 그 사이에 있다. ‘2008.7.24 주전해수욕장’ 이라 적힌. 아빠가 낡은 트럭을 몰던 때, 나는 중간에, 동생은 엄마 다리 위에 앉아 설레는 마음으로 갔었던 그 바다. 사진 한 장 남기기 어려웠던 시절, 엄마는 우리에게 추억을 예쁘고 맨들한 돌멩이로밖에 남겨줄 수 없었을지 모르지만, 내 마음 속엔 그 돌멩이 하나가 엄마아빠와 갔던 바다에서 흰 바지가 다 젖어도 자지러지게 웃던 우리의 모습을 활짝 웃으며 담던 엄마, 고둥이나 게 한마리라도 찾아주려고 허리가 굽어라 돌멩이를 하나 하나 뒤집던 아빠의 모습, 돌멩이로 울타리를 만들어 그 안에 고인 바닷물 속에서 움직이던 작은 생명체를 한참이고 들여다보던 동생의 반짝이던 눈이 떠오른다. 떠올리면 어둑하지만 참 행복하고 따뜻했던 추억이 그 돌멩이 하나에 들어있다. 어디서든 둥그렇고 맨드라운 돌멩이를 볼 때마다 나는 그 날을 함께 만난다.
하찮다 여기는 돌멩이에 우리는 자신의 인생을 건 소원을 빌기도 하고, 작은 아이들은 꿈을 키운다. 어릴 적 가족을 만나기도 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냈을 그 소망이 돌탑 덕분이라 생각하는 누군가에겐 아무 의미 없는 돌덩이가 세상 모든 의미가 되고, 꿈을 꾸는 아이들에겐 끝없이 펼쳐지는 세상이 된다. 인간에겐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이름을 붙이는 재주가 있다. 이야기를 만드는 재능이 있다. 세상 모든 것엔 아무 의미가 없다. 그저 오랜 시간이 만들어냈을 뿐인 것을 안다. 오늘의 우리가 의미를 만들 뿐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능력을 구태여 썩힐 필요가 있나 생각해본다. 내 안에 숨겨진 능력을 펼치면 세상 모든 것이 특별할 수 있는데.
모든 것이 아무 의미 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아무 의미 없는 돌멩이로 태어났으면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돌멩이조차 누군가에겐 세상의 전부이자 꿈, 살아갈 이유가 된다. 아무런 의미 없는 세상을 마주하며 허무에 빠지는 사람이기보단 세상 모든 것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사람이고 싶다. 혼자만의 세상에서 머리를 굴릴 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온 세상이 너무도 허무하게만 느껴지던 때에 읽은 어떤 책에서 작가는 사람이 허무주의에 빠지는 이유는 사람과 마주하지 못해서, 세계와 공명하는 법을 잊어버려서. 라고 말했다.
오늘 우리, 함께 마주 보자. 우리는 작은 것 하나에도 숨을 불어넣을 수 있는 오만하고도 아름다운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