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밭 복숭아나무
할아버지밭 복숭아나무
2026.01.20
은·⌛15분

누구에게나 나무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친구와 나무를 타고 놀던 기억. 좋아하는 곤충을 찾으러 온 나무를 뒤지던 기억. 더운 여름날 소나기를 막아주고,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나무 아래서 쉬어가던 기억. 마을을 지키는 나무에 간절히 소원을 빌었던 기억. 비 온 뒤, 나무가 뿜어내는 내음에 마음이 맑아졌던 기억. 어떤 날, 나무 사잇길을 혼자 걷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위로를 받았던 기억 같은.

외갓집은 포도밭과 복숭아밭을 했다. 대문 옆엔 감나무가, 밭으로 나가는 길 옆엔 사과나무도 몇 그루 있었다. 엄마는 과수원집 딸이라고 그 덕에 맛있는 과일을 참 잘 고른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나는 전 세계 어디서도 외갓집 복숭아만큼 맛있는 복숭아는 먹어본 적이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평생을 일궈온 밭이었다. 그 세월을 함께한 나무들이었다. 비가 오고 눈이 와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밭으로 나갔다. 번개가 치고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그런 날에도 밭에 나가 호미질을 하는 할머니, 잡초를 뽑는 할아버지 곁에 우산을 들고 얼른 들어오라 보챘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들은 하나에 딸이 다섯이지만 할아버지는 딸들도 모두 대학은 나와야 한다며 그 시절에 여섯 남매를 모두 대학에 보내셨다. 자식들이 아플 때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플 때도, 그 덕에 빚을 졌을 때도, 이모와 삼촌 모두 결혼을 하고, 나와 사촌 동생들이 태어나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할아버지의 포도와 복숭아 나무들은 우리 가족을 키우고 지켜냈다. 80 넘게 평생 밭을 일군 덕에 할머니는 이제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볼 수 없다. 어깨는 숟가락도 들 수 없을 만큼 더 이상 쓸 수가 없게 되었다. 90이 다 되어가던 할아버지도 덥고 추운 날 그냥 둘 수 없는 농사일 덕에 탈진과 폐렴을 반복해서 얻었다. 각지에 살고 있는 자식들이 농사를 도맡을 수가 없었고, 그대로 두면 할머니는 나무가 죽지 않게 허리가 부서져도 밭에 나갈 사람이었다. 허리가 굽어진 할머니를 데리고 병원에 갔을 때, 엄마는 참 부끄러웠다고 했다. 의사선생님께서 허리와 등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자식이 이렇게 많은데, 딸들은 안말리고 뭘했냐고 혼을 내셨다고 한다. 절대 누구 말을 듣는 할머니는 아니었지만. 할머니는 자신보다 나무들을 더 귀하게 여기던 사람이었다.

부모님을 지키고자 이모와 삼촌은 밭에 있는 포도나무와 복숭아나무를 맡아줄 사람을 찾느라 애를 썼지만 살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밭만이라도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기로 뜻을 모았다.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복숭아에,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인 나는 여름 과일들이 열리는 할아버지 밭이 정말 좋았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복숭아를 먹을 수 있는 할아버지 복숭아밭에 복숭아가 익어가는 향을 맡을 때면 정말 행복했다. 아니, 할아버지 밭에서 뛰어 놀던 기억들 덕분에 여름이 좋은 건지도 모르겠다. 엄마아빠가 하루종일 돈을 번다고 나를 봐줄 수 없었던 시절, 외갓집에 맡겨졌던 나의 어릴 적 사진첩엔 할아버지 복숭아밭에서 찍은 사진들이 많다. 덩굴처럼 자라는 포도나무에 사이사이 작은 포도나뭇잎이 자랄 때 쯤이면 포도가 잘 익을 수 있게 가지치기를 해야했다. 가위질을 할 수 있을 나이가 되고부터 할아버지는 나에게 가지를 자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모와 이모부가 나무에 올라 복숭아를 따주면 삼촌과 빨간 복숭아 한 소쿠리, 하얀 털복숭아 한 소쿠리를 무겁게 들고 이고 나르며 포장을 도왔던 기억도 생생하다. 할머니는 팔아야 되는 좋은 복숭아, 포도를 고르면서도 우리 먹을 제일 좋은 복숭아 몇 개, 포도 몇 송이는 꼭 챙겨주었다. 평상에 때가 잔뜩 낀 선풍기를 틀어놓고 앉아 깎아 먹었던 복숭아는 세상에서 제일 달았다. 사촌들과 사계절 포도밭 나뭇가지를 헤치며 곤충을 잡으러 다니고, 푸세식 화장실이 무서워 다 함께 손을 잡고 밭에 쪼롬히 앉아 볼일을 보고 나면 괜히 떨어진 나뭇가지로 덮어두기도 했다. 사춘기 시절, 울적한 날엔 달달한 포도와 복숭아 향을 맡으며 밭을 한 바퀴 돌다 복숭아 나무 밑에 멍하니 서성이고 나면 기분이 나아졌다. 넓은 포도밭 중간쯤 있던 우물은 너무 무서웠지만 끝도 없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비가 한참 오지 않아 우물이 텅 비었을 때는, 동생과 손을 꼭 잡고 서로 빠지지 않게 잡아주며 나뭇가지로 우물 안을 휘휘 젓기도, 끝이 없는 안을 들여다보며 소리를 질러보기도 하고, 농기구들이 있던 창고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호미와 낫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 수 있었다. 장작으로 베어놓은 나무를 두드려 잘라보기도 하고, 잡초풀을 파내 뿌리를 쑥 뽑는 놀이를 참 재미있어 하기도 했다. 호미가 상하고 손이 다친다고 만지지 못하게 하던 할아버지 몰래몰래 그랬다. 진짜 더운 날 나무 그늘에 앉아 할머니가 만들어준 얼음 띄운 식혜를 먹으면 하나도 덥지 않았다. 매미소리가 귀를 찌를 듯 울려도 온 나무에 있던 매미 허물을 발견하면 정말 신이 났다. 잠자리, 달팽이, 개구리, 메뚜기는 말해 뭐해. 중학교 겨울 방학 땐, 친구들을 데려가 아랫목에 누워 숨이 막힐 듯 두꺼운 이불을 덮고 놀다 여름방학 땐, 포도랑 복숭아를 실컷 먹고 양손 가득 들고 돌아오기도 했다. 버스 제일 뒷자리에서 저 앞에까지 데굴데굴 굴러가는 복숭아를 잡으려고 땀을 뻘뻘 흘리다가 깔깔 웃던 날들도 잊을 수가 없다.

넓은 밭, 내가 뛰어놀던 그 땅 아래 서로 손을 잡고 단단하게 얽혀 나를 받쳐주었던, 땅 위에 우리의 이야기를 더해 굵어져 기댈 곳이 되어주고, 매해 달콤함을 건네주던 나무들은 엄마 아빠가 채워주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채워준 내 부모이자 친구였다.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는데 아무래도 할아버지밭 복숭아나무 밖에 생각이 안났다. 그 자리를 지키는 나무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우리의 이야기는 나뭇잎에 새겨진다. 고 말하는 책을 본 적 있다. 우리 할아버지집 복숭아나무에는, 포도나무의 커다란 잎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을까.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와 동생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자랐을 그 나무들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던 복숭아도 다시는 먹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온 세상 나무들을 볼 때 느끼는 마음은 할아버지 복숭아밭에서 자란 것이라는 걸 안다.

20대 중반 쯤 한창 직장에 바쁘게 다니던 때 엄마가 할아버지밭에 나무들을 모두 베기로 했다고 했을 땐, 서운했지만 엄마와 이모들, 할아버지, 할머니를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프지 않았으면 했고, 엄마, 아빠가 힘들지 않았으면 했다. 서른이 넘은 지금 텅 비어버린 그 밭을 볼 때면, 그 때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수십 년을 키우던 100그루가 넘는 나무를 모두 베어냈을 때, 어떤 추억과 생각들이 지나갔을까. 감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어떤 심정으로 이 빈 밭에 서 있었을지 생각하면 나는 여전히 먹먹해진다.

할머니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밭에 매일 한 번 씩 나가신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서도 그렇게나 그 밭이 있는 집으로 가고 싶어 하셨다. 어쩌면 할머니도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처럼 온 몸이 부서져 죽더라도 자식들을 키워낼 수 있었던 터전이자 자신의 삶 전부인 그 밭에서 생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으실까. 그런 생각을 한다. 역시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할아버지밭 복숭아나무는 모두 사라졌어도 나에게 많은 것을 또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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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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