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형태
언어의 형태
2026.01.27
은·⌛13분

막 열불을 내며 설명하다 상대가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 말문이 턱 막히면 이런 말을 쓰곤 합니다. 말이 안 통하네. 대화가 안 된다는 뜻이죠. 말이 안 통하는 세상입니다.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이야기를 하는데도 참 답답해질 때가 많아요. 글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 글이 뭔소리야 싶을 수도 있지요. 인간의 뇌는 세계의 복잡성을 감당하지 못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문자언어, 수학, 과학, 그 무언가로 해석하고 체계화 시킵니다. 복잡한 감정, 정보, 세계에서 오는 무언가를 우리의 한계로 단순화 시키는 작업일지도 모르지요. 가끔은 인간의 문자언어가 가장 진화된 언어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건 그 이상인데, 글이라는 가장 딱딱한 틀 안에 갇히기도 하구요.

우리 할머니는 글자를 모르십니다. 전세계에서 문맹률이 낮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한민국에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입니다. 어릴 적, 제가 글을 적을 수 있게 된 뒤, 할머니 생일에 편지를 적어드렸던 때, 할머니의 함박 웃음을 기억합니다. 아빠는 제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어요. 손녀에게 편지도 받아보는 기분을 느껴보라고 그런건지, 그 편지에 제 마음이 들어있어서 말리지 않은 건진 모르겠지만요. 저는 이 사실을 중학생 시절이 다 지나고서야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였어요. 언젠가 온 가족이 식사를 하려고 할머니집에 모인 날, 할머니께서 주방 찬장에서 퐁퐁을 꺼내 들고선 노란색이라 기름인 줄 알고 샀는데 거품이 나더라 그리 말씀하시며 멋쩍게 웃으시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엄마는 종종 할머니가 잘못 사둔 물건이나 음식 재료들을 조용히 옮겨두고 할머니가 사려고 했던 그 물건들을 저에게 사오라고 하곤 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뒤, 그림 실력이 그리 좋지 못한 전 더 이상 할머니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습니다. 할머니께서 편지를 펼치고 제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대답을 해주어야 할지 온 가족이 할머니를 바라보는 그 시선에 어쩌면 불편한 마음이 들 수 있을 것 같아서였어요. 말로 더 표현하고 따뜻한 포옹으로 대신하기로 했지요. 글을 알려드리고자 여러 번 말을 건네보았지만, 할머니께서는 평생을 이리 잘 살았는데 복잡하고 어렵다며, 구태여 배우고 싶어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엄마는 우리 할머니 때문에 지금까지 아빠랑 산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며느리가 한 명 뿐이라도 단 한 번도 시집살이를 시킨 적도, 엄마를 귀히 여기지 않은 적도 없다면서요. 할머니는 아빠보다 엄마를 더 아꼈습니다. 저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엄마가 저를 낳고 조리를 할 때, 할머니는 매일같이 미역국을 따뜻하게 끓여주었다고 해요. 그 때는 엄마도 몰랐었는데 외갓집에 가니 상다리가 부러지게 반찬과 음식들을 내주었다며 할머니께서 단 한번도 그런 상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어디서 듣지도 알지도 못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고를 해주었다는 것을 느껴 마음이 아렸다고 말한 적 있었습니다. 엄마는 지금도 외할머니 김치보다 할머니 김치를 더 좋아합니다.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서도 그 시절 영어까지 배우셨다는 외할머니보다 할머니의 말없는 지혜에 항상 감탄하고, 배우고, 겸손해진다고 말합니다. 할머니처럼 멋지게 늙고 싶다구요. 할머니는 60년이 넘게 시장에서 야채를 파십니다. 춥고 더운 날도 파라솔 하나 펴놓고 매일같이요. 그 세월을 함께한 시장 사람들에게 평생 아쉬운 소리를 들어본 적 없다 말씀하시는게 할머니의 자랑거리 입니다. 국수집에서 매일같이 점심을 먹으면서도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에 쉽게 말을 더하지 않고, 얼굴 익은 손님은 꼭 기억해 나물 한 줌 더 얹어주고, 리어카 끌고 가는 아저씨와도 두런두런 안부와 이야기를 주고 받는 분이십니다. 무슨 정을 내셨는지, 동네 사람들은 지나가다가도 할머니한테 들러 과일이나 양말, 수건 같은 생활용품들을 나누곤 합니다. 저번에 고마웠다면서요. 우리 엄마 마늘 까기 힘들다고 본인의 엄지 손톱은 절대 바짝 자르지 않으셔요. 이래야 마늘이 잘 까진다면서요. 항상 깨끗이 깐 마늘을 봉지 가득 보내주시지요. 빚지고서는 못살아 짐을 들어주는 사람에겐 꼭 요구르트 하나라도, 용돈 한 푼이라도 더 얹어주고, 그러다가 누가 뭔가 잘못되었다 하면, '아이, 나는 몰랐어~ 이제 그래하면 되지~ ' 하고 웃어 넘기시는 귀엽고 멋지고 쿨한 분이세요.

글을 알지 못하는 할머니의 언어에는 사랑과 지혜가 있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할머니는 더 많은 것들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저 읽히고 보여지는 것들의 너머를 읽을 수 있는 눈을 가졌으니까요. 온갖 말과 글로 넘쳐나는 세상 속에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있습니다. 전 그 사실은 선명하게 적을 수 있습니다. 할머니 덕분에 세상엔 다른 언어로도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알았을지도 몰라요. 지금까지도 전 할머니가 글을 몰라서 말이 안통한다고 느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뭐 어디 대단하다하는 직장 상사나 어른들과 대화를 할 때 오히려 말이 안통해 화가 올라온 적은 있어도요.

지구상에는 7천 개가 넘는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모든 인간의 수만큼, 모든 생명의 수만큼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훌륭한 시의 단어 한 자가, 훌륭한 그림의 점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의 말 한 마디가 수십 수백 가지의 뜻으로, 세상 모든 경우의 수로 해석되는 것처럼요. 어떤 생물은 자기 몸의 밝고 어두운 무늬를 변화시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음파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기도 하잖아요. 우리 인간도 어쩌면 그 너머의 것들로 대화를 할 수 있을지도, 그럴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우리는 그래도 서로 잘 이해하기 위해 그나마 통용되는 언어로 마음을 전하고자 애를 씁니다. 하지만 내 마음 같은 말을 찾다가도 너무 좋아하는 음악의 전주가 울릴 때, 경이로운 풍경에 감탄할 때,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를 느낄 때면 그 이상의 언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인간의 위대한 발명인 언어도 그 어떤 마음 앞에선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느낄 때. 나를 걱정하는 눈빛, 세월이 잔뜩 묻은 손으로 만들어주는 음식, 맛있게 먹는 내 곁을 지키는 따뜻한 체온, 그 시간을 견뎌온 깊은 주름 같은 것들로도 알 수 있게 됩니다. 꼭 글이 아니더라도요.

그런 언어를 우리는 사용합니다. 멋지지 않나요? 말 뿐인 세상의 모진 말에 상처 받지 마세요. 다정한 눈빛으로, 따뜻한 체온으로 건네는 말을 믿으세요. 저의 서툰 글에 온기를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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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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