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건 없다. 우린 반드시 죽는다.' 변하지 않는 명제가 있다면 전 이 두 가지 일거라고 생각합니다. 무한히 흐르는 세상 속에 찰나 유한한 삶을 사는 나약한 '인간'이 이 명제를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살아내는 내내 고통의 연속입니다. 매일 무언가와 투쟁하면서요. 전 매일 죽음을 생각하며 삽니다. 전 삶을 사랑하는 쪽이에요. 이 편에서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하루 더 안고, 한번 더 표현하고, 그렇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웃고, 부딪히면 울어버리고, 분노는 때론 동력이 되고, 막 열 내다가도 삼시세끼 밥 먹고 자고 나면 털어지고, '몰라, 그냥 살자.'고 결론이 나더라구요. 돈은 없습니다. 하루에 하나씩은 후회하고, 그래도 또 똑같이 실수하고, 내일은 절대 안그래야지 반성하고, 더 나은 내가 되어야지 다짐하면서도 내일이 오늘 되면 또 그러고. 그러면서 사는 게 인간이니까요. (그래서 재밌긴 함.)
참 여기저기 아주 오래 아픈 엄마 덕에 중학생 시절부터 죽음에 대해 아주 많이, 정말 아주 많이 생각했습니다. 딱 낫지도 않고, 딱 죽지도 않고. 그 날이 오늘일지, 내일일지, 5년 뒤일지, 10년 뒤일지 아무것도 모른 채. 매일을 그렇게 지냈습니다. 뭐 하나 선택하는 것엔 세상의 무게가 다 나에게 온 것처럼 무겁고 불안했고, 눈부시게 행복한 날엔 온 세상 회색빛의 슬픔과 칠흙같은 죄책감이 저를 삼켰어요.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 더 욕심 내는 마음. 무언가를 꿈꾸고 내일을 그리는 마음이 더 커지지 않게 늘 조절해야 했죠. 제가 감당할 수 있을만큼이어야 하니까요. 가장 두려운 순간을 매일 생각하고, 못해도 괜찮은 마음을 매일 연습했습니다. 하루키의 말을 빌려 삶의 한가운데서 모든 것이 죽음을 중심으로 회전하던 때가 있었어요. 제가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오늘을 마주보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하루하루가 소중해졌어요. 더 많이 표현하게 되었고, 그저 오늘 주어진 시간은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것 밖에는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구요.
할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려봅니다.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로 몇 년을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마지막은 한 달은 산 듯 죽은 듯 그렇게 병원에 계셨습니다. 치료할 수 있는 방법 없이 병원에 있는 시간은 길어지고 생명을 유지하는 장치에 들어가는 돈은 점점 불어나고 가족들은 지쳐갔지만 어느 누구도 차마 산소 호흡기를 떼겠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더라 하셨어요. 이 또한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어릴 적 할아버지 집에서 커왔던 저에게 할아버지는 아주 큰 존재였어요. 할아버지는 10명이 넘는 손자손녀 중에서도 저를 가장 예뻐하셨습니다. 그 사랑은 저의 뿌리가 단단해 질 수 있게 많은 순간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왠지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싶은 무서운 마음이 들 때는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늘 생각했던 죽음의 순간이 후회로 남지 않아야 하니까요. 그 덕에 제게 그런 존재의 생명이 꺼져 가는 순간을 감사하게도 지켜볼 수 있었지요. 그 순간을 아주 오래 가만히 들여다봤습니다. 아주 슬펐지만 하나도 무섭진 않았어요.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었으니까요.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충분히 작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하늘이 그 시간을 허락해주심이 그저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손녀와 자식들을 모두 본 뒤, 숨을 거두셨습니다. 숨도 혼자 쉬지 못하고, 홀로 외로이 쓸쓸히 누워 계셨지만 할아버지의 마지막 순간은 꽤 괜찮은 죽음 같았습니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다는 생각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 병원에 가신 날, 할아버지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잠시 정신이 있을 때, 할머니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내내 얼굴을 쓰다듬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다 안다고. 괜찮다고. 먼저 갈 테니 잘 있다 따라오라는 작별 인사를 내내 얼굴을 쓰다듬는 것으로 대신했겠지요. 정신이 있으셨을 때 할아버지는 선망 증세와 치매 증세를 보이시다가도 저는 또렷이 알아보셨습니다.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힘이 없을 때에도, 혀가 말려 말을 못하실 때에도 제 목소리가 들리면 눈을 뜨셨지요. 힘없는 와중에도 웃으시면서요. 이모들은 초점이 없는 것 같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분명 저를 봤습니다. 할아버지 얼굴 옆으로 귀를 가져다 댄 저에게 다 뭉개진 발음으로 전해진 말은 밥은 먹었냐는 말이었으니까요. 그런 할아버지에게 나를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나의 할아버지여서 고맙다고. 너무나 아껴준 걸 잘 안다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잘 컸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눈물이 차올라 입밖으로 뱉지는 못했지만, 두 눈으로 말하고 체온으로 전했습니다.
세상엔 안녕하지 못한 죽음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잘 압니다. 나의 죽음, 사랑하는 또 다른 이의 죽음엔 또다른 고통이 따르겠지요. 할아버지의 죽음은 축복일지도 모릅니다. 할아버지에게도, 가족들에게도요. 이모들은 오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힘들어 했지만, 늘 죽음 곁에 있던 우리 엄마는 평온해 보였습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 대하는 태도도 모두 달랐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은 저에게 큰배움을 줍니다. 죽음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그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할아버지 얼굴에 아빠의 얼굴이 겹쳐 보였어요. 그 언젠지 모를 언제가 닥치면 전 준비한대로 괜찮을 수 있을까요. 절대 아니겠지요.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미워해 이젠 정말 괜찮을 것 같다가도 얼마나 오래 잠겨있을지 여전히 가늠할 수 없음이 당연합니다. 점점 어두워지는 할아버지를 뒤에 두고 이모들은 장례식장 이야기를 하고, 저는 병원비를 계산했습니다. 이런저런 준비들을 하며 때론 웃기도 하구요. 배도 고프더라구요. 누군가 함께 있음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아주 많이 들었어요. 죽음을 보았으니 꼭 필요한 사람들만 남고 집으로 흩어져 내일 장례를 준비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이것이 죽음이었습니다. 가족, 친구, 연인. 우린 앞으로 얼마나 많은 죽음을 마주하게 될까요. 사랑한만큼 얼마나 더 울어야 할까요. 얼마나 더 불안에 떨어야 할까요. 죽으면 고통이 끝이 날까요? 사랑하지 말걸. 사랑하지 말지. 수없이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게 닥칠 수많은 죽음을 그리다보면 그 끝은 항상 '지금'으로 돌아옵니다. 전 삶을 사랑하는 편이니까요. '오늘'을 좀 더 충분히 살자. 생각하게 되지요.
전 여전히 많은 순간 순간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어떤 때에 가만 생각하다보면 목이 턱 막혀옵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날도 여전히 있지요. 이 마음이 1년 뒤에 더 깊어질지, 5년 뒤엔 괜찮아질지, 그러다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어 10년이 지나면, 아빠가 할아버지가 된 모습을 본다면 더 미어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죠. 닥쳐올 죽음도 여전히, 너무나 두렵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모두가 죽는다면, 아득하게 아름다운 우주에, 먼 나라에서 봤던 쏟아지는 별이 가득한 사막에, 눈부신 하늘, 살랑이는 구름과 바람에, 반짝이는 비와 무지개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면 전 꽤 괜찮아집니다. 그렇게 언제 어디든 함께 있는 거라 생각해보려구요. 세상 모든 나무에서 할아버지를, 세상 모든 돌멩이에서 모든 하늘에서 엄마를 생각하는 것 처럼요. 너무 그리워질 땐, 너무 안고 싶을 땐,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한 번 더 안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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