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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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03
은·⌛15분

삶이란 무엇일까요? 저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질문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어릴 적부터 전 나무가 자라는게, 돌멩이가 부스러지는게, 변하는 날씨가, 화와 눈물 같은 다양한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궁금했습니다. 대단히 감성적이어서라기보다는 단순히 궁금해서요. 앞선 모든 글들은 혼자 되뇌이던 질문들에 대한 답입니다. 아직까지는요.

최근 메신저로 편리하게 열람할 수 있는 생활기록부를 친구들과 함께 본 적이 있는데요.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기도 하구요. 초등학교 5학년 생활기록부에 제가 세심한 관찰력을 가졌고,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잘 알고 표현할 줄 안다. 학습성과나 의견 협의 과정을 발표하며 생각과 느낌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야기 하기를 즐겼다고 적혀있더라구요. 중학교 2학년 생활기록부를 보면 토론과 탐험에 흥미와 관심이 많고, 활동 후 소감을 말하기를 즐긴다는 문장이 또 있어 굉장히 놀랐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엔 다양한 분야의 책 읽기를 즐기고 감상문을 꾸준히 제출하였으며, '진정 보람된 삶이란 무엇인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잃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와 같은 주제들에 대해 성찰하여 조사한 바를 바탕으로 성찰문을 적어 내었다는 문장도 있었습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시절, 제가 뭘 어떤 질문과 소감들을 그렇게 이야기 했길래 선생님들께서 이런 이야기를 적어두신 걸까요. 대충 좋게 좋게 적어주신 걸지도 모르지요. 저랬던 전 크면서 다 묻지 못할 때가 많아졌습니다. 내 생각을 삼키고, 입을 다무는 순간들이 많아졌습니다. 여러 이해관계가 있어 질문을 시작하는 순간 분위기가 망가지기도 하고, 누군가 불편하고 괴로워지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물론 도파민이 도는 사람도 있겠지만요. 저도 괴로울 때가 많지만 후자에 더 가까운 듯 합니다. 전자는 아마 누군가 원하는 답을 해주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에서 콧등에 땀이 차기 시작할지도 몰라요. 어쩌면 답을 모르기 때문이겠죠. 답을 정해내려야 하는데 정해진 답이 없는 물음에 곤란해집니다. 혹은 누군가의 기준에 옳은 답을 찾고 싶기 때문인 건 아닐까요. 세상에 어디에도 정해진 답을 없는데 말입니다. 그냥 말하기 싫은 걸 수도 있어요. 상대의 시선과 반응이 신경이 쓰여서겠지요. 너무 강하게 자신의 의견을 늘어놓거나 해서 내 마음을 터놓을만한 사람이 아니라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입을 다무는 대부분은 그런 것 같아요. 스스로 좋은 답을 찾지 못했다 생각했을 때 역시 고통스러우나, 이랬던 기억은 금새 잊어버리고 전 또 '왜?' 라고 질문합니다. 질문하는 순간 대화는 이어지고, 예기치 못한 질문을 다시 받게 되기도 하지요.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거나, 생각지 못했던 접근에 당황스러울지도 모르지만, 그럴 때도 내가 왜 답을 못하지? 내가 왜 답을 하기 싫지? 그런 물음표들이 항상 머릿속에 떠올라요. 또 참지 못하고 되물을 때도 많아요. 그 꼬리를 무는 생각과 대화 속에서 무언가를 깨닫게 될 때, '이야, 이걸 내가 이제서야 알았네.' 혹은 '아, 그래서였구나!', ‘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순간은 참 즐겁습니다.

인형의 입에 눈알을 붙이는 일을 묵묵히 1년을 하면 꽤 괜찮은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했을 때, 그걸 왜 못하냐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눈으로 저를 처다보는 저희 부모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구요. 그 뒤에 알게 되는 것도 있다구요. 하지만 저는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늘 어려웠습니다. 납득이 되어야 동기가 생기는걸요. 모든 것을 다 파헤지고 조금 더 깊이 닿고 싶은 욕심이 저를 힘들게 할 때도 많지만 그렇게 생겨먹은걸 어쩝니까.

인간은 왜 궁금해 할까요? 왜 알고 싶을까요? 모르는 대로 흐르는 대로 둘 수는 없는 걸까요? 그런 질문들을 뱉다보면 어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잉? 우리가 같은 언어로 대화하고 있는 게 맞나? 아니,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가..?' 싶은 생각까지 들게 됩니다.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도,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식도 모두 다르니까요. 그렇기에 또 질문하게 되지요. "질린다, 질려, 징하다, 징해." 라고 하셔도 할 말은 없습니다. 궁금한 게 많다는 건 이해 능력이 부족한 걸지도 몰라요. 공감능력도요. 어쩌면 둘 다 떨어지는 저는 묻는 인간이니 불편하시다면 저를 떠나시면 되어요..

저에게 질문이란, 제가 저와 세상을 애정하는 방식입니다. 때론 무기력이 삶을 지켜내는 사투이기도 하고, 방 안에 웅크리는 것이 살기 위한 발악이기도 한 것 처럼요. 물으면 알 수 있게 되지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요. 세상에 대한 호기심. 즉, 관심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말하면 더 신이 나게 해주고 싶고, 힘들어하면 함께 해법을 찾아주고 싶고, 불편해한다면 그건 피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일 뿐입니다. 서로에게 너그러워 물음표들이 좀 더 편안히 허락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요. 지금 당장 답을 못해도, 생각이 변하더라도 궁금할 수 있는거잖아요..? 확신에 차서 막 이야기하고선 집 가는 길에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고, 내 생각과는 다른 의견을 들으며 ‘아, 나는 그건 절대 아닌데.’ 하며 또 다른 확신을 얻게 되기도 하겠지요. 내 이야기가 누구에게 불편하게 느껴졌을까? 어떤 경우의 수를 돌이켜보기도 합니다. 살아가면서 모든 걸 다 이해하고 정의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모르는 채로 두는 게 나을 때도 있어요. 분명 논리와 말 너머에 있는 무수한 것들이 있죠. 어쨌거나 저쨌거나 뭐 둘 다 즐기면 좋은 것 아니겠어요. 이게 답이다. 답을 찾았다 생각이 들다가도 어떤 날 저를 돌아보면 사실 해놓은 것도, 할 수 있는 거도 없다는 사실을 마주보게 됩니다. 그럼 저에 대해 묻고 또 물어요. 의심하고 또 의심하죠. 돌고 돌아도 같은 답이 내려질 때도 있구요. 누군가 덕분에 깨닫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이게 아니었구나 반성하게 되기도 합니다. 마흔 즈음이 되면 좀 더 휘어질 줄 알게 되려나요. 그럼 질문이 좀 더 줄어드려나요.

어쨌든 지금 제가 질문을 통해 알아낸 삶에 대한 답은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꼭 쥐고 있을 때보다 느슨하게 잡았을 때 더 많은 것을 안을 수 있다는 것. 변하지 않을 것 같던 나도 변하고 있다는 것. 말하지 않아도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묻고 또 묻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게 아무 짝에 도움이 안 될 때도 있다는 것. 뭐 이 정도인 것 같아요. 다시 또 변할 거라는 걸 이제는 알지만 전, 지금 내가 확신하는 것, 내 마음, 옳다고 믿는 것을 소리내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러다 언제 어떤 순간을 마주쳤을 때, 용감하게 저의 확신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생각하곤 합니다. 여전히 그런 충격을 선물해주는 새로운 인연들을 그립니다. 니체도 말했죠? '모든 좋은 것은 멀리 돌아가는 길을 통해 목적에 다다른다.' 질문은 끝이 아니라 무언가, 누군가를 알아가는 여행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아직은 그런 질문의 힘을 믿습니다. 마구마구 궁금할 때, 그러다 무언가를 깨닫게 될 때, 깨어질 때, 저는 살아 있다고 느낍니다. 답이 없는 물음표들, 끊임없는 도돌이표 사이 그 고뇌들이 삶이라 생각합니다. 그 사이의 무한히 넓은 세계에서 즐거우시길 바랍니다. 한 개도 안 즐겁고 너무 피곤하고 머리 아프시다구요..? 그럼 뭐, 오늘 먹고 싶은 저녁 메뉴나 떠들자구요. 도토리묵채가 좋을까요? 들깨수제비가 나을까요? 오늘 날씨, 뭔가 막 설레지 않아요? 어떤 계절을 가장 좋아하세요? 이런 날 냅다 공원을 뛰어보는 건 어떨까요? 달빛을 받으며. 아니, 어제 보름달 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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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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