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마후라 등
노란마후라 등
2025.11.10
제이크·⌛35분

아무튼 부산여행

1일차 저녁 : 미포의 불빛, 조개의 냄새
서울에서 내려오는 KTX 안에서 줄곧 눈을 감고 있었다. 눈을 감으면 생각이 조금은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7년의 시간을 함께한 남자가 떠난 자리엔, 공기가 비어 있었다. 부산역에 도착하니 이미 오후 다섯 시. 동경은 아직 퇴근을 못 했다며, “조금만 기다려요. 오늘은 내가 계획 다 짜놨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믿고 숙소로 향했다.

호텔 욕조에 물을 받아두고 책을 펼쳤다. 물속에선 시간이 좀 천천히 흐른다. 그 느린 리듬이 좋았다. 아무 생각도 안 하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제일 어려웠다. 해운대는 처음이었다. 광안리의 저녁이 들뜬 기분이라면, 해운대의 저녁은 묘하게 눅진하고 조용했다. 흐린 하늘 아래로 부서지는 파도는 의외로 거칠었다. 바람이 세게 불 때마다 창문이 덜컥거렸다. 그 소리가 사람 마음을 더 허물어뜨리는 것 같았다.

일곱 시가 다 되어 동경이 도착했다. 그녀는 평소보다 훨씬 피곤해 보였다. 괜히 미안했다. 괜히 왔나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동경이 말했다.

“해운대만 부산 아니에요. 미포도 있고, 청사포도 있고, 송정도 있어요. 오늘은 미포 갈 거예요.”

택시 안에서 그녀는 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님, 미포 <노란 마후라>로 가주세요.”

노란 마후라는 이름부터 이상하게 따뜻했다. 도착하니 바다를 향해 유리창이 나 있고, 조개 굽는 냄새가 공기처럼 퍼져 있었다.

불판 위에는 이미 반쯤 열린 조개들이 빼곡히 올려져 있었다. 버터 한 조각이 떨어지자마자 철판이 ‘치익’ 소리를 냈다. 순식간에 바다 냄새 위로 기름의 향이 피어올랐다. 하얀 조개의 가장자리가 서서히 말리면서 노릇하게 색이 변했고, 껍데기 속에서는 육즙이 끓어올라 제 몸을 뒤집듯 부풀었다.

조개는 늘 천천히 익는다. 그 느린 시간 동안은 아무 말도 하기 어렵다. 불 앞에 앉아 있으면 사람 마음도 조개처럼 익어간다. 속이 뜨거워질수록 겉은 차분해지고, 껍질이 벌어지는 순간 비로소 속마음이 드러난다.

나는 젓가락 끝으로 조심스레 한 점을 집었다. 입 안에 넣자 짭조름한 바다 향이 퍼졌다. 이건 단순한 소금맛이 아니었다. 그 안엔 오래된 여름의 냄새, 어릴 적 바닷가에서 흘리던 땀과 모래, 그리고 그리움의 잔향이 섞여 있었다.

동경은 조개를 굽다 말고 말했다.

“조개는 어차피 다 동해에서 와요. 맛 차이는 별로 없어요. 근데 여긴 뷰가 좋아요. 그리고 해물라면이 진짜 맛있어요. 없던 숙취도 해소된다니까.”

라면이 나왔을 때, 김이 가득 차오르며 유리창이 흐려졌다. 국물은 매운 기운보다 시원한 단맛이 먼저 느껴졌다. 조개, 새우, 홍합이 그득한 냄비는 마치 작은 바다처럼 끓어올랐다.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올리자 국물이 실처럼 흘러내렸다. 한입 물자, 뜨거운 수증기 사이로 생생한 바다의 짠맛이 혀끝을 쳤다. 매운맛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맛이었다.

뜨겁고 짜고, 삼키면 시원하다. 조금 울컥했지만, 뜨거운 국물을 삼키며 숨을 고르자 속이 천천히 정리되는 기분이 들었다. 불판 위의 조개는 여전히 ‘툭툭’ 터지며 익어갔고, 바깥에서는 바람이 세게 불었다. 유리창 너머로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불판 위의 기름 튀는 소리가 묘하게 섞여 하나의 리듬을 만들었다. 그건 분명 부산의 밤이 내는 소리였다. 그제야 조금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9시 반, 마지막 해변열차를 타고 송정으로 갔다. 차창 밖으로 바다가 따라왔다. 달빛은 흐린 하늘에도 희미하게 남아 있었고, 사람도 거의 없었다. 그 조용한 바람과 파도 소리에 마음이 조금 덜 시끄러워졌다.

송정 바닷가를 산책했다. 왕복하니 딱 한 시간. 우리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묘하게 편했다. 헤어지고 처음으로, 마음이 잠시라도 비어 있지 않았다.

밤 12시 반, 다시 해운대로 돌아왔다. 호텔로 돌아와 창문을 열었다. 밤공기가 눅진하게 들어왔다. 바다를 바라보다가 동경에게 말했다. 어떻게 헤어졌는지, 헤어지고 난 뒤 두어 번 마주친 일들, 이제 끝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는 마음, 그 사람이 이미 몇 번의 소개팅을 했다는 소식, 그래도 카톡 한 줄 보낼까 망설였던 마음.

그런 이야기들을 쏟아내자 동경은 처음엔 같이 화도 내주고, 달래주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만해요, 소진씨.”

동경의 그런 말투는 처음이었다. 늘 웃던 입꼬리가 단단히 닫혀 있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대단했어요?”

그 한마디가 허공을 가르고 떨어졌다. 지금까지의 대화가 모두 사소한 하소연처럼 느껴졌다.

“그냥 정들었던 거잖아요. 정이라는 게, 이별하면 원래 통증처럼 남아요. 그걸 사랑으로 착각하는 거예요.”

순간, 심장이 멎은 듯했다.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반박할 수 없었다. 나는 웃으려다 실패했고, 대신 물컵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요. 나는…”

“쉬운 얘기 아니에요. 근데 지금처럼 계속 그 얘기하면, 결국 그 사람한테 붙잡혀 사는 거예요. 본인은 떠났는데, 혼자 그 그림자 밥상 차려놓고 앉아 있는 거라고.”

그 말이 가슴에 쿡 박혔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열어둔 창문 밖으로 파도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울컥했다. 동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테이블 위에 있던 휴지를 한 장 밀어줬다. 그 한 장의 흰 종이가, 밤공기보다 차가웠다.

2일차 아침 : 동백섬의 바람, 복국의 온기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에 눈을 떴다.

“소진씨, 일어나요. 산책 가요.”

동경의 목소리가 커튼 사이로 들어왔다. 커튼을 젖히자 회색빛 하늘 아래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창문을 열자 눅진한 비 냄새와 함께 짠 공기가 밀려왔다. 바닷내가 코끝을 찔렀다. 체크아웃시간까지는 느긋하게 더 자고 싶었지만, 그 냄새에 잠이 달아났다. 방 안 공기가 바다로 쓸려나갔다.

동백섬은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도 드물었다. 흙길에는 밤사이 내린 비가 남아있었고, 솔잎이 눅눅하게 깔려 있었다. 우산 대신 모자를 눌러쓰고 천천히 걸었다. 바다를 끼고 도는 한 바퀴는 딱 한 시간이 걸렸다. 파도는 여전히 세게 쳤지만, 어제보다 부드럽게 들렸다.

동경은 조용히 앞장서 걷다가 불쑥 말했다.

“우리 아이슬란드 갔을 때 생각나죠?”

“그때 바람 장난 아니었잖아요. 여기랑 비슷하네요.”

둘 다 웃었다. 잠시 어색했던 공기가 풀렸다.

“그때 여행 식구들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 사람들은 다들 자기 인생 사느라 바쁘겠죠.”

그렇게 이야기하며 한 바퀴를 다 돌고 나니, 시장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동경이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복국 먹어봤어요? 맛있는데. 초원복국이라고, 유명해요. 본점은 딴 곳에 있는데, 그래도 본점만큼 맛있어요.”

식당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창가 자리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동경은 메뉴판을 보며 익숙한 손놀림으로 주문했다.

“지리 하나, 매운탕 하나, 콩나물무침 많이요.”

잠시 눈치를 보더니

“복술도 두 잔 주세요.”

복술은 한 잔에 육천 원이었다.

“비싸죠? 근데 지금 안 먹으면 또 언제 먹을지 모르잖아요.”

그녀의 말투는 가볍지만, 어쩐지 허전했다.

“여기 원래 김영삼 전 대통령 단골집이었어요. 예전엔 정치인들이 모여서 회의도 하고 밥도 먹던 자리였대요. 그 유명한 ‘우리가 남이가’ 사건도 여기서 나왔죠. 부산 사람들한텐 그냥 복국집이 아니라 상징 같은 곳이에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복술잔을 내밀었다. 잔을 부딪치자 살짝 쓴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단숨에 들이키자 맑은 액체 속에 감춰져 있던 독기가 혀를 덮쳤다. 알코올 도수는 높았지만, 단단히 숙성된 향이 그 자극을 감싸 안았다. 입안에 남은 비릿한 향과 복어 뼈가 우러난 국물 냄새가 뒤섞이며, 순간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밑반찬과 동경이 미리 말해둔 콩나물무침이 나왔다. 밑반찬은 정말 다 맛있었다! 특히 오징어무침은 입안에서 매운기와 새콤한 단맛이 번갈아 퍼졌다. 콩나물무침은 복국과 함께 준비되어 나오는 거라 추가 주문이 안 된다고 했다. 그 말이 괜히 아쉬웠다.

지리는 맑았다. 투명한 국물 속에서 복살이 하얗게 풀어졌다. 국물 한 숟갈을 들이키자, 매운기보다 깊은 단맛이 먼저 왔다. 매운탕은 진했다. 고춧가루가 떠다니는 붉은 국물 속에서 복살이 두툼하게 익어 있었다. 한입 먹자 입안이 화끈했지만, 곧 시원함으로 바뀌었다.

그때 빗방울이 후두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유리창을 타고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일이 좀 생겼어요. 잠깐만 나갔다 올게요. 두세 시간 안에 끝낼게요.”

“갑자기요?”

“응, 금방 끝날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떠났다. 이상하게 허전했다.

잠시 뒤 카톡이 왔다.

‘밀면 먹고 싶으면 두 군데 중 하나 가요. 광안리 갈 거면 남천동 가야밀면, 서면 쪽이면 국제밀면. 일정 따라 가까운 데로.’

서면은 왠지 번잡할 것 같았다. 바다는 아직 보고 싶었다. 그래서 광안리로 향했다.

2일차 점심 : 광안리의 비, 밀면 한 그릇
가야밀면집에 들어가자마자 김이 뿜어져 나왔다.

혼자 앉은 테이블 위엔 물컵 하나와 반찬 두 가지, 그리고 밀면 한 그릇이 놓였다.

국물은 얼음이 살짝 녹은 탓인지 차갑지만 부드러웠다. 첫 입은 새콤했고, 두 번째 입은 달았다.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들자, 굵은 면이 탄력 있게 따라올라왔다. 조금 두꺼운 편인데도 텁텁하지 않았다. 육수가 면에 잘 스며들어 한입 한입이 시원했다.

옆 테이블 손님이 식초를 들이붓는 걸 보고 따라 해봤다. 새로운 맛이었다. 신맛이 국물을 깨워줬다. 혼자서 먹는 밀면은 조용했다. 밖에서는 비가 더 세차게 내렸고, 유리창 너머로 회색 바다가 보였다.

식당을 나서니 거리엔 우산들이 부딪히며 지나갔다. 어디를 가도 사람뿐이었다. 카페마다 만석이었다. 대형 프랜차이즈도, 작은 개인 카페도, 다들 웅성거렸다. 사람에 치여 걸음을 옮기다 보니 바닷가에서 한참 떨어진 골목까지 왔다. 그때 알록달록한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강아지 용품점, CRR.

가게 안은 길고 좁았다.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이상하게 편했다. 진열대엔 인형과 간식, 목줄이 빼곡했다. 집에 있는 마루가 생각났다. 인형 하나 사줄까 고민하다가, 괜히 짐 될까 싶어 그냥 나왔다. 그사이 비는 더 거세졌다.

‘동경은 언제 오는 걸까.’

카톡을 열었다가 닫았다. ‘편히 일 보고 와요’라고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다. 오늘 저녁엔 그녀의 집에 가기로 했는데, 어제 밤 이후로 왠지 눈치가 보였다. 그때 메시지가 도착했다.

‘TTT 카페로 가요. 바다 보이니까 거기서 기다려요. 한 시간 안에 갈게요.’

TTT 카페는 광안리 끝자락에 있었다. 비가 심해서 기대를 접었는데,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는 놀라웠다. 회색빛 물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기둥 뒤쪽 자리에 앉아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맑은 날 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의 목소리가 낮고 단단했다. 설명을 듣고 ‘동방미인’이라는 차를 주문했다. 잠시 뒤, 다른 직원이 와서 차를 내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찻잎이 물속에서 피어나는 모습이 유리잔 안에서 천천히 번졌다. 그 장면이 묘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1시간 20분쯤 지났을 때, 동경이 나타났다. 어제보다 더 피곤해 보였지만, 웃으며 말했다.

“어, 나도 동방미인 제일 좋아하는데.”

그 말에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그녀가 앉자마자 비가 그쳤다.

2일차 저녁 : 분식의 냄새, 뒤집힌 광안대교
“광안리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 아쉽잖아요. 분식 사서 야경 보여드릴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택시를 잡았다. 남천시장에 도착하자 택시 기사에게 “잠깐만 기다려주세요”라고 했다. 골목 안으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엉뚱한 상상을 했다. 혹시 나를 두고 가버리면 어떡하지.

몇 분 뒤, 봉지 한가득 분식을 들고 나타났다. 손에는 종이컵이 하나 더 있었다. 김말이 하나, 순대 몇 조각이 담긴 컵을 기사님께 건넸다.

“아가씨가 센스 있네!” 기사님이 웃었다.

“이기대공원 입구 주차장으로 가주세요.”

기사님이 말했다. “아가씨 진짜 부산사람 맞네. 거기 뷰 끝내주죠.”

정말 그랬다. 광안대교를 등지고 본 풍경은 전혀 달랐다. 왼편에는 빽빽한 불빛들이 번지고, 오른편에는 검은 바다가 끝없이 이어졌다. 동경이 말했다.

“해운대보다 낫죠? 오늘은 날씨도 괜찮고.”

분식 냄새가 따뜻했다. 떡볶이는 달콤했고, 어묵국물은 짠 기운 사이로 미묘한 단맛이 스며 있었다. 김말이는 바삭했고, 순대는 탱글했다. 비릿한 바다 냄새와 따뜻한 어묵국물이 섞이자 이상하게 마음이 풀렸다.

‘드디어 보고 싶던 바다의 모습이네.’

밤 9시가 넘어서야 동경의 집에 도착했다. 비에 젖은 머리를 말리고 샤워를 했다. 나왔더니 주방에서 또 맛있는 냄새가 났다. 투움바 파스타와 와인이었다. 배가 불렀는데 이상하게 이건 또 들어갔다. 크림의 느끼함 대신 부드러운 향이 입안을 채웠다.

그날 밤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불빛이 꺼지고, 바람이 멈추자, 창밖의 도시가 조용해졌다. 바다를 봐서 그런가, 마음도 조금은 잠잠해졌다.

3일차 아침: 떠나는 날엔 얼조라 한 잔
3일차 아침에는 느긋하게 눈을 떴다고 생각했는데, 시계를 보니 벌써 9시였다. 평소엔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 그 시간은 분명 늦잠이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자 동경이 물었다.

“국밥 먹을래요, 브런치 먹을래요?”

사실 부산 국밥은 여러 번 먹었다. 맛있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말했다.

“브런치요”

동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 저는 부산 국밥은 어딜 가든 다 맛있어서 한 군데 꼽기가 힘들어서 그렇지만요. 대신 제일 좋아하는 카페에 데려다줄게요. 어차피 부산역 가는 길에 있어요.”

택시를 탔다. 창밖으로 바다가 멀어지고, 도심이 펼쳐졌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습기가 느껴지는데 비릿한 냄새는 없었다.

“여기 온천천이에요.”

동경이 말했다. 온천이 있어서 온천천이란다. 그는 하일권의 만화 <목욕의 신>에도 이 근처 목욕탕이 나왔다며 웃었다. 강가를 잠시 산책하다가 골목길로 들어섰다. 10분을 더 걸으니 통창의 카페가 나왔다.

‘홀스앤타이거’.

사장님이 말띠고, 언니가 호랑이띠라서 지은 이름이란다. 줄여서 ‘홀타’. 이름이 참 잘 붙었다고 생각했다. 귀여워. 카페 안은 동화 같았다. 벽에는 일러스트 엽서들이 줄지어 붙어 있었고, 창가 앞에는 말과 호랑이 인형이 있었다.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것 같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편안한 분위기였다.

사장님은 얼조라를 추천했다. 얼음 조금 넣은 라떼, ‘얼조라’. 말만 들어도 부산 사람의 말맛이 느껴졌다. 우린 얼조라와 하와이안 피자, 명란 들기름 파스타를 주문했다.

입구 근처엔 블랙탄 시바견 한 마리가 얌전히 앉아 있었다. 조용히 앉은 모습이 이곳 단골 같았다. 뒤편엔 여자 둘이 앉아 있었고, 그들 옆에는 조그만 푸들이 있었다.

“여기 강아지랑 애기들 다 와요.”

동경이 말했다. 곧이어 엄마와 딸이 들어왔고, 문가에 있던 시바견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푸들도 꼬리를 흔들며 달려갔다. 노펫, 노키즈존이 익숙한 요즘, 이런 장면은 낯설면서도 묘하게 따뜻했다. 마음이 조용히 풀렸다.

음식이 나왔다. 얼조라는 고소한 우유 향보다 에스프레소의 쌉쌀함이 먼저 올라왔다. 첫 모금은 묵직했고, 끝에는 살짝 단맛이 남았다. 얼음이 적어서인지 우유가 물러지지 않아, 커피의 향이 오래도록 혀끝에 머물렀다.

하와이안 피자는 오븐에서 막 나온 듯 치즈가 부드럽게 늘어났다. 바삭한 도우 위에 파인애플이 올려져 있었는데, 달콤한 과즙이 치즈의 느끼함을 정리해줬다. 짭조름한 햄이 그 사이사이를 메우며 입안에 바다 바람 같은 짠 향을 남겼다.

명란 들기름 파스타는 첫 젓가락부터 놀라웠다. 들기름이 면마다 얇게 스며들어 반짝였고, 뜨거운 면에서 고소한 향이 피어올랐다. 명란 알이 터질 때마다 톡톡 바다의 짠맛이 퍼졌고, 마지막엔 미묘한 매운맛이 남았다. 그 맛이 묘하게 동경의 말투와 닮았다. 짠내와 단내, 여운과 쌉쌀한 매운맛.

식사를 마치고 택시에 올랐다. 동경은 큰 가방을 뒤적이더니 보냉백 하나를 꺼냈다.

“이건 고래사 어묵이에요. 다들 삼진 어묵만 아는데, 저는 이게 더 고소하고 맛있어요. 물론, 좀 더 비싸긴 하지만요.”

장난스럽게 쿡 웃는 얼굴.

부산역 앞에서 택시가 멈췄다. 동경은 기차 타는 곳까지 같이 가겠다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혼자 있고 싶어요.”

한사코 따라내리려던 그녀는 이내 웃으며 이해했다.

“그래요, 그럼 다음에 봐요.”

짧게 인사한 뒤 동경은 내가 타고 온 택시를 그대로 타고 돌아갔다.

나는 총총히 부산역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별하고 마음 정리를 하러 내려왔는데, 정말 정리가 된 걸까. 속을 후련하게 털어놓은 것도 아니고, 엄청난 풍경을 본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 속이 든든했다. 인터넷에서 본 말이 떠올랐다. ‘여자들아, 외로우면 탄수화물을 먹어라. 연애는 하지 말고.’ 그래서 그런가, 내려올 때보다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여전히 허하긴 했다. 뭔가로 채워야 할 것 같은 기분.

기차에 올라 자리를 잡자 서울에 있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몇 시쯤 도착해?”

“세 시쯤.”

“그럼 저녁에 보자. 나 요가 가야 돼. 아니면 너도 같이 갈래? 여기 원데이로 수업 들을 수 있어.”

“음…그럼 나도 같이 갈까?”

서울의 오후, 땀과 숨으로 마음을 조금 더 비워볼 생각을 하며, 기차는 천천히 북쪽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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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
안녕하세요. 제이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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