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지인들 사이에서 나는 꽤나 알아주는 식객이다.
그래서 오늘 주제를 본 이후로 어깨에 힘이 빠지질 않는다.
전국의 평양냉면집을 줄세웠다 글을 지우고, 대구에 내로라는 맛집을 줄세웠다 지웠다.
누구나 아는 집은 ‘나만의’ 맛집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추천하기엔 유명세가 덜하지만 내 입맛에는 정말 맛있는 나만의 맛집으로 다시 추려 보았다.
스시하(대구 시지)
이 집은 배달로만 먹는다. 맛집 추천 첫 주자가 배달집이라니, 실망했는가? 하지만 다른 곳을 제치고 스시하를 먼저 이야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마음이 너무 지친 날, 늘 맥주 한 캔과 함께 이 집 오마카세 초밥을 먹는다. 켜켜이 정돈 된 초밥은 눈을 자극하고, 부드럽게 으스러지는 샤리와 달큰한 숙성회는 입안을 가득 채운다. 기름지고 달큰한 것들이 번갈아 오가는 순간, 마음의 피로가 풀린다.
이 집의 숨어있는 포인트는 간장이다. 사제 간장 같은데, 듬뿍 찍어도 짜지 않고 가쓰오부시 향과 약간의 훈연향이 초밥의 풍미를 끌어올린다.
이 동네에 산 지 3년. 벌써 18번을 시켜먹었다. 두 달에 한 번 꼴이다. 매번 첫 입에 미간을 찌푸리며 ‘오늘도 최고’라며 리뷰를 남기지만, 사장님의 대댓글은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리뷰 이벤트도 없다. 그래서인지 댓글은 42개뿐. 게다가 거리가 멀면 퀵비는 고객 부담이다.
냉담한 운영방식으로 배달 앱에서는 늘 중하위권이다. 마치 배달 손님이 불청객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배달로만 주문한다. 이름만 오마카세가 아니라 퀄리티 또한 오마카세 급인데 이 것을 집에서 먹는다는 만족감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미만분식(대구 효목동)
효목골 막창 근처, 간판부터 범상치 않은 분식집이 있다.
“미녀만들기” 맞춤 속옷집 아래, 작은 현수막에 ‘미만분식’이라 쓰여 있다. 90년대 감성이 느껴지는 분식집이다.
나는 사실 분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이 집 분식은 예외다. 뻘겋고 걸쭉한 소스의 떡볶이에서 윤기가 흐른다. 달기만 한 떡볶이도 아니고 캡사이신 매운 맛도 아니다. 아주 약간 매콤하고 칼칼한 느낌이다.
떡볶이는 그자체로도 온전해야지만 소스로서의 역할도 충실해야한다. 튀김이나 순대를 찍어먹어야하기 때문이다. 이 집 떡볶이는 소스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 너무 묽어서 흐르지도 않고 너무 개성이 쎄지도 않다.
아, 그리고 순대를 같이 시킨다면 꼭 소금에도 찍어먹어봐야된다. 이 집 순대에는 당근조각이 들어있는데 (혹 당근이 아니면 얘기해주세요.. 주황색의 야채입니다) 나는당근이 들어간 찰순대는 꼭 소금에 찍어먹는다. 그 순대만의 맛이 있다. 어릴 때 분식집에서 먹던 그 순대 맛이다. 이 집 순대가 그렇다. 소금에 한 번, 떡볶이에 한 번, 먹다보면 금세 다 먹는다.
이 곳에선 어릴 때로 잠시 돌아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동생과 서서 분식을 먹으니 20여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떡볶이 가격도 1인분에 2천원으로 사장님께서 남는 장사를 하고 계신게 맞는지 의심이 드는 가격이다.
솔직히 말해, 미만분식을 떠올릴 때면 효목골 막창과 콜라보 메뉴가 나오면 어떨까 상상한다. 구운 막창을 떡볶이에 찍어 먹는 그 순간,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사장님께는 한번도 얘기해본 적 없지만 익명의 힘을 빌려 작은 바램을 고백해본다.
부산안면옥(대구 교동)
마지막 추천만큼은 냉면 집으로 하고싶어 부산안면옥으로 소개를 해본다.
한 때 치아교정 때문에 한 달에 한번씩 반월당을 갔었다. 그 때마다 나는 맛집 탐험을 했었다. (여담이지만 그래서인지 치아교정을 하고 살이 되려 더 쪘다.)
그 때 우연히 알게 된 집이 부산안면옥이다. 교동에 이런 곳도 있었나-싶었다. 거래처가 인근에 있어 자주 가던 교동 초입에 낡고 푸른 간판이 있었다. 대문을 들어서 가게 입구로 걸어들어가면 오래 된 가게 내부가 나를 반긴다. 그 날은 1, 2층 통틀어 딱 하나의 자리가 남아있었다. 저마다 냉면 그릇에 젓가락을 챙챙 부딪히며 냉면을 먹고 있다. 제육에 소주 한 잔 하는 어르신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평양냉면 하나 주세요- 하고 주문하니 은주전자를 하나 내어주신다. 메밀면수일까 육수일까 기대하며 따라봤는데 오예- 육수이다.
뜨거운 육수를 호호 불며 먹고 있다보니 음식 엘리베이터의 요란한 소리와 함께 냉면이 서빙 됐다.
쫑쫑 썬 파와 넓적하고 얇게 썬 고기 한 점, 그리고 동그랗게 빚은 완자가 특징적이고, 오이와 배, 무를 차곡차곡 쌓고 계란으로 꼭대기를 장식한 냉면이다.
나는 평양냉면이 나오면 국물부터 들이키고 본다. 평양냉면은 국물이 투명하기 때문에 유독 첫 입이 긴장 된다. 호기심과 두려움을 뒤로 한채 국물을 살짝 들이키니 서울에서 먹던 우래옥과 비슷한 맛이 난다. 국물에서 느껴지는 포스가 있다.
그 후 면를 풀지 않은 채 몇가닥을 따로 먹어 메밀맛을 느끼고 면과 고명을 풀어 냉면을 먹는다. 약간 질릴 때쯤 한젓가락 집어 면에만 식초를 살짝 뿌려 먹는다. 그러다 보면 완그릇이다.
또 한가지 알아야할 건 이 집에 숨은 메뉴이다. 이 집은 4월부터 9월까지만 영업을 하는데, 그 중 첫달과 마지막 달인 4월, 9월만 접시만두를 판다.
만두피가 두툼하고 울퉁불퉁 투박한데 한 입 먹으면 고소함이 입에 퍼진다. 내 예상으로는 고기만두와 김치만두를 섞어서 주시는듯한데 겉으로 봤을 땐 전혀 티가 안나서 랜덤하게 먹는 재미도 있다.
이 집은 희소성이 가치를 더한다. 이제 영업종료일이 한달도 채 남지 않았으니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먹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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