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롯
비롯
2025.11.09
여름·⌛3분

비롯

먼 나라에서 사는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다.

"어제 네가 내 꿈에 찾아와서 아주 두꺼운 책을 주고 갔어. 절대로, 절대로 읽지 말라고 하면서."

그 친구의 이름은 여름
나는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너를 생각한다.

네 꿈은 어디서 비롯된 걸까
네 편지를 읽는 순간 빗속에 서 있는 것 같았는데
그건 고작 비닐봉지로 피할 수 있는 비가 아니었는데

배 속에 한 아이를 품고 있는 너

한겨울에도 지겹도록 여름이어야 하는 너를 생각하면
읽지도 못할 책을 건넨 나를 원망하고 싶어진다

새하얗고 따뜻한 것만을 주고픈 마음
이 마음은 또 어디서 비롯된 걸까
접시를 깨뜨린 날엔 벽을 뚫고 끝없이 달려 나오는 기차를 보게 돼
내가 놓친 전부를 싣고 가는

그러니까 보드라울 줄 알고 겁 없이 만진 복숭아 때문에
벌겋게 부어오르는 손이 있다는 것
그건 조심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손의 주인도 알지 못하는 시간의 일이라는 것

그리고 묶여 있다는 뜻이겠지
우리의 영혼이

백수를 사신 할머니는 눈이 펄펄 내리는 날
몸을 벗고 방에서 걸어 나갔고
그때부터 나는 나비가 죽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안다.

비밀에게도 비밀이 필요한 순간은 있으니
절대로, 절대로 읽어서는 안 될 책을 펼치는 여름도 오겠지
언젠가의 우리는 지금 이 문장에서 비롯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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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안녕하세요. 여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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